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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1-07-19 (화)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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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도 대학신입생 뿌리교육 소감문(1)

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께서 인천이씨 뿌리교육에 참여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여름방학 초기에 2박3일이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그 좋은 시간에 교육을 받으라니 불만투성이 된 상태에서 원서를 쓰게 되었는데 쓰자마자 교육은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길러주신 아버지 이름 석자를 한자를 못 쓰다니. 정말 죄송스러웠다. 그리고 우리 집에 족보가 있다고 듣긴 들었지만 그렇게 크고 잘 정리되어 있을지는 상상도 못하였다. 어렸을 때 친구네 족보를 보았는데 그 족보에는 여자 이름이 적혀있지 않았지만 우리 인천이씨 족보에는 여자들 이름까지도 적혀 있는 것을 보고 무엇인가 자랑스러웠다. 뿌리교육에 참여하고 고유제 지내는 법과 나보다 윗사람을 상대할 때 아랫사람을 상대할 때의 예절을 배웠고 일상생활에서의 예절도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인천이씨공도공파종회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크고 장대한 종회인지는 상상도 못하였다. 오천교육관을 오면서 내가 보았던 그 장관은 아마 죽을 때까지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막상 대학교에 입학하고 무엇을 해야 되나 막막하고 아무런 계획도 없었는데 뿌리교육에서 가르쳐 주셔서 드디어 값진 대학생활을 보내기 위한 기초를 잡게 되었고, 인천이씨를 빛낸 위인들과 공도공파가 만들어지는 과정, 공도공파의 시조이신 이문화 선생님의 생애, 대와 세의 구분 등 여러 가지를 배우게 되어 뿌리교육을 주최한 인천이씨공도공파종회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우리 가문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게 되었다. 0민

19기 대학신입생 뿌리교육에 참여할 수 있어 보람찼다. 2박3일이라는 기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동안 나의 뿌리, 나의 시조에 대해 더욱 깊고 심도 있게 탐구할 수 있는 기회였다. 더욱이 같은 성씨의 사람들이 모여 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서먹서먹하던 첫 대면과는 달리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로 간에 끌리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의 시조에 대해 더욱 자세히 설명해주고 내가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대해 탐구할 수 있어서 대단히 보람이 있었다. 이런 기회가 없었다면 내 뿌리도 모르고 내 성씨에 대한 자긍심과 긍지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仁川李氏라는 성씨를 가지게 된 것이 이렇게 자랑스러운 일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고, 이런 기회를 매년 만들어주고 개최해주는 인천이씨공도공파종회에 감사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비가 오는 날씨 탓에 조상들의 묘소에 찾아가지 못한 것이다. 묘소에 찾아뵙고 인사도 드렸다면 더욱 유익했을 것이다. 다른 성씨의 뿌리교육은 이렇게까지 하지 않는다는 소릴 들었을 때는 우리가 얼마나 값진 교육과 시간을 보내고 가는지 느낄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인천이씨공도공파종회에 감사드리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공도공파 34세(世) 이0원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0원

음에 뿌리교육이라는 인천이씨종친회에서 주최하는 행사가 있다는 사실에 생소하면서도 나랑 같은 성씨를 가지고 같은 핏줄이라는 많은 대학생 신입생들을 만나게 된다는 사실이 무엇인가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처음 혼자 천안역에 도착해 찾아간 오천교육관은 많은 친구들이 먼저 와있었는데 무엇인가 모두 처음 보는 얼굴이고 잘 모르는 상태라 낯선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3일 동안 지내면서 친구들과도 친해지고 유익한 강의도 많이 들으면서 우리가 여태까지 잘 느끼지 못했던 선조의 훌륭한 업적들에 대하서도 많이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대학 생활에 대한 강의를 들으면서, 남을 따라 나아가기보다는 나 자신 스스로의 목표를 확실히 하고 꿈을 향해 직접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평소에 인천이씨만이 한 뿌리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김해김씨와 허씨도 한 뿌리에서 나왔다는 생각을 하니, 놀라우면서도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것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강의를 듣는 것만큼이나 식사시간도 즐거웠는데 특히 간식으로 준비 된 찐빵이 너무 맛있었다. 그동안 평소에는 내 자아정체성이나 내가 인천이씨의 후손이라는 사실에 대해 사명감이라던 지 책임감을 더 느끼게 된 것 같다. 앞으로 내가 더 크고 여건이 된다면 나 또한 이 종친회가 발전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0

는 제19기 인천이씨 뿌리교육에 참가하게 되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기차를 4시간동안 타고 천안역에 도착하여 다시 택시를 타서 오천교육관에 도착하였다. 그런 다음 고유제에 관한 설명을 듣고 직접 고유제를 모시는걸 보았다. 비도 많이 왔고 서있기 힘들었지만 신기하였다. 그런 다음 예절교육 등 여러 교육을 듣고 첫날이 지나갔다. 둘째 날엔 오천이문화 선생님에 대해 듣게 되었다.  또 대학생활에 대한 교육 마지막으로 전래민요에 대해 알아보고 또 불러보았다. 집을 떤 2박3일 동안 여기 와서 많은 것을 배웠고 우리가문의 뿌리에 대해 알게 된 것 같아서 좋았다. 교육을 받을 땐 지루하고 잠도 오긴 했지만 오길 잘 한 것 같았다. 0진

아버지의 소개로 뿌리교육에 대해 알게 되어 이곳에 오게 되었는데 처음 이곳에 와서 다양한 지역에서 온 나와 같은 피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신기한 마음과 기쁨을 느꼈습니다. 새로운 친구도 사귀고 밥도 맛있고 어르신들도 좋고 무엇보다 건물이 생각했던 것과는 달라 제일 좋았습니다. 듣게 된 강의도 무척이나 좋았는데 예절교육에서 공수와 절하는 법을 배워 너무 좋았습니다. 평소 절을 할 때마다 헷갈려서 어색하고 부끄러웠는데 동영상을 보고 강의내용을 듣고 그 방법을 정확히 배워서 다음부턴 자신 있게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첫날 산신제에서 산축 역할을 맡았는데, 재복을 입고 똑바로 공수하고 절을 할 수 있어서 굉장히 뿌듯했습니다. 그리고 아쉽게 이규정 교수님이 사고를 당하셔서 이재도 교수님께서 강의를 하셨는데 평소 관심을 가지고 정확히 알고 싶어 하던 한반도문제에 대하여 간략하게나마 강의를 들어 너무 좋았습니다. 요즘 이상하게 북한의 정책에 대해 옹호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다음 20기 뿌리교육에서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토론형식으로 다룬다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 다음 가장 기대했던 인천이씨의 역사시간 역시 정말 좋았습니다. 평소 동네 어른이나 가족의 어른께 인천이씨공도공파가 무슨 말인지 공도공이 어떤 건지 우리 조상님은 어떤 분인지 물어보았지만 깨끗한 대답을 얻지 못했었습니다. 사실 전 조상님도 없고 그냥 돈으로 족보를 사거나 만든 것이 아닐까?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뿌리교육을 받으며 공도공 할아버지가 나의 중시조이고 또 이 씨 성이 처음부터 이 씨가 아니라 허 씨에서 바뀐 것, 인천이씨가 된 이유들을 이번에 알게 되어 굉장히 뿌듯합니다. 그 다음으로 허철회 선생님의 강의에서 이문화 할아버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었는데 시간이 부족해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쉬웠습니다. 다음 교육에선 문화 할아버지에 대해 조금 더 요약적으로나마 자세히 다루어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다음 이재도 교수님의 강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대학생 1학년에게 너무나 도움이 되는 말을 해주셔서 좋았습니다. 다음엔 좀 시간이 넉넉해 자세하게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배경숙 선생님의 강의도 좋았습니다. 인천이가의 이재옥님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 아리랑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게 되어 좋았습니다. 이번 교육을 통해 확실히 내 뿌리에 알게 되니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깁니다. 이러한 기회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0국

2011년 6월 23일. 설레는 마음으로 천안으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에 올랐다. 인천이씨 뿌리교육을 한다니 정말 놀랍고 신기한 일이었다. 친척들 말고 이때까지 인천이씨를 만나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와 같은 성씨를 가진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는 생각에 무척 떨렸다. 기차에서 나려, 400번 버스를 타고 신성아파트 단지 앞에 내렸다. 오천교육관을 찾아가야 하는데, 비도 오고 거리도 먼 것 같아 막막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 말고도 오천교육관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보였다. 나와 같이 기차를 타고 온 재국오빠와 새로 만난 다영, 승원 이와 택시를 같이 타고 교육관을 향해 출발했다. 그런데 이런... 택시기사 아저씨도 오천교육관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셨다. 천안의 택시기사 아저씨가 길을 모르면 어떻게 하라는 건지....  표지판, 안내판을 보고 겨우겨우 열한시 전에 오천교육관에 도착했다. 점심을 먹고 환영사와 축사 후, 고유제를 올렸다. 고유제에서 집사를 맡았다. 색다른 경험이었다. 난0

음에 부모님께 2박3일 뿌리교육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러나 날짜가 다가오고 오천교육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전에 왔던 형, 누나들의 교육 받는 사진을 보니 흥미가 생기고 기대가 됐다. 아침 일찍 천안행 기차를 타고 갈 때는 들뜨기까지 했다. 오는 길은 울퉁불퉁했지만 건물 외관도 깔끔하고 경치도 훌륭하고 건물 내부도 깨끗해 다행이라 생각했다. 학생들이 다 모이자 우리들을 환영해 주시는 어르신들을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했다. 2박 3일 동안 마련해주신 일정들 중에서 고유제가 제일 기억에 남았다. 하기 전에 몇몇 학생들에게 고유제에 필요한 역할을 분담 해주셨는데 다 처음 듣는 명칭들이라 생소하기만 했다. 고유제를 위해 오천재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여 학생들이 옷을 갈아입는 걸 보니 TV에서만 보아왔던 모습을 실제로 보게 되어 신기하고 학생들이 어르신들과 함께 고유제를 지내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았지만 왠지 경건해지는 것만 같았다. 다시 교육관으로 돌아와 예절교육에 참여했다. 인사하는 법도 워낙 여러 가지라 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공수를 할 때 남자는 왼손을 오른손 위에 겹쳐 얹고, 여자는 오른손을 왼손 위에 겹쳐 얹어야 한다는 것이 기억난다. 저런 예절들을 누가 다 지키나 생각했지만 자신보다 나이 많은 사람뿐만 아니라 나이가 같거나 어려도 예절을 지키는 것은 인상 깊었다. 이튿날에는 일정이 교육 받는 것 밖에 없었다. 제일 처음 한반도 문제에 대해 이재도 어르신께서 말씀해 주셨다. 한반도 문제에 당국인 남한과 북한이 아닌 다른 나라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는 게 화가 났다. 두 번째 교육은 인천이씨의 역사에 관한 것이었다. 책 앞에 있는 세보 도를 보니 이허겸 시조 할아버님부터 공도공파까지가 한 눈에 다 들어왔다. 세 번째는 오천 이문화 할아버님의 생애에 대한 교육이었다. 공도공파의 파조이신만큼 더 공부해봐야겠다. 다음으로는 대학 생활 비법에 대해 말해주셨는데 우리나라의 교육에는 문제가 있고 마지막에 해주신 ‘가난하다면 부모 잘못이고, 가난해서 죽는다면 나의 잘못’이라는 말이 기억이 난다. 그리고 저녁에는 전래민요아리랑에 대해 배워보았다. 아리랑도 같이 불러보니 흥겨웠다. 같은 성씨끼리 2박3일 동안 지내니 더 편했던 것 같고, 유익한 시간이었다. 용0

기 오기 전에는 무엇을 배우고, 누구를 만날까 궁금했는데 실제 오니 인천이씨에 대해서, 대학생활에 대해서 잘 배운 것 같습니다. 또한 여기서 혈족 친구들을 만나서 기뻤습니다. 어려서부터 본관과 우리 성씨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많았었는데 관련된 자료도 많이 받고 해서 좋았던 것 같습니다. 다만, 교육시간을 볼 때, 한 강의가 너무 길고 낯선 내용이라 지루한 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강의시간을 줄이고 다양한 강의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친목도모의 의미도 있는 자리라고 생각되는데 안면을 트고 좀 더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특별한 프로그램이 없어도 되니 저녁식사 후 얘기 나눌 수 있는 분위기, 자리를 마련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인천이씨 뿌리교육이 많이 발전해서 신입생들이 계속해서 우리 성씨에 대해 많이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0혁

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이곳에 왔지만 뿌리교육 수업을 들으면서 인천이씨에 대한 내용뿐만 아니라 많은 것에 대해 배웠습니다. 예절 교육을 통해 조상님께 제사를 지내고 예의를 지키는 법, 그리고 평소 생활 할 때도 지켜야 할 예절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인천이씨의 역사에 대해서 수업을 들을 때에는 어떻게 인천이씨 가문이 시작될 수 있었는지, 가문을 빛낸 조상님들과 전반적인 인천이씨의 역사를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공도공 이문화 할아버님의 업적과 삶에 대해 알고 앞으로 이문화 할아버님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배우는 것이 예의를 지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부끄러운 가문의 역사라고 덮거나 변명하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말씀이 굉장히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것에 대해 목표를 세우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실 때에는 저도 마음 깊이 동감했습니다. 이번 뿌리교육을 통해 저의 정체성에 대해 조금이나마 배운 것 같고 저의 대학생활과 태도를 다시 되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지0

음으로 뿌리교육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약2개월 정도 전이다. 합천에 살고 계신 할아버지께서 부르시더니 종이 한 장을 건네주셨다. ‘뿌리교육’에 참가하기 위한 양식이 적혀 있는 종이였다.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기를 가서 같은 집안 친구들과 만나고 제지는 법도 배우고 다 끝나면 장학금도 준다고 하셨다. 신청서는 급한 것이 아니니 천천히 당신께 주면 된다고 하셨다. 아마 그 때가 중간고사를 끝내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었던 걸로 기억한다. 급한 일이 아니라 생각하였기에 받아든 종이를 그저 책상 한편에 둔 채로 신경도, 관심도 가지지 않았었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한 달가량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으로 전화가 한 통 왔다. 할아버지셨다. 시간이 오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신청서를 내지 않는 나에게 독촉전화를 하신 것이었다. 그때서야 책상에 아무렇게나 놓아둔 신청서를 다시 보게 되었다. 양식을 채우려고 펜을 든 순간. 처음부터 막막했다. ‘한자이름’ 영어로, 일어로는 내 이름을 쓸 수 있지만 한자이름은 쓸 수가 없었다. 결국엔 주민등록증에 있는 한자를 ‘쓰기’보단 베꼈다. 이런 내가 아빠이름을 한자로는 커녕 갑신보에 내가 몇 권 몇 쪽에 등록되어 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아빠의 도움으로 신청서를 다 작성했고 필요한 서류도 같이 구비하여 할아버지께 드렸다. 할아버지께서는 연락이 갈 테니 기다리고 있으면 된다고 하셨다. 서류까지 내고나니 그제야 뿌리교육에 대해 궁금해졌다.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에 ‘인천이씨대종회’를 검색해보았다.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인천이씨의 역사, 유래 등등 많은 글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관심이 있었던 뿌리교육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를 얻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며칠 후, 뿌리교육에 관한 일정표와 안내문을 메일로 확인해도 뿌리교육의 ‘뿌’자도 찾을 수가 없었다. 사무실로 전화를 해보니 메일 주소가 잘못 된 것이었다. 여차저차해서 안내문을 받았다. 뭔가 신기했다. 궁금하기도 했고 빨리 23일이 왔으면 했다. 6월 23일. 진주에 사는 나는 천안에 가기 위해 6시 반에 집을 나왔다. 천안으로 바로 오는 버스가 없어서 대전을 경유해서 왔다. 시내버스도 타고 약도를 따라 내려서 오천교육관을 찾아 걸었다. 근데 약도도 허술하고 비도 많이 와서 그냥 택시를 탔다. 택시 아저씨께서도 오천교육관이 어딘지 모르셨다.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검색해서 좀 늦게 도착했다. 벌써 많이들 와 있었다. 늦었기에 바로 옷을 갈아입고 자리에 앉아 절하는 법에 대한 동영상을 봤다. 동영상을 다 보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식당도 따로 있고 밥도 맛있었다. 이렇게 체계적인 것이 신기했다. 밥을 다 먹고는 제사를 지내고 여러분께 수업도 들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진짜 인천이씨에 대해 배우는 것 때문이 아닌 이 교육을 수료함으로서 받는 돈에 관심이 있었다. 근데 막상 와서 아주 먼 친척이긴 하지만 여러 사람을 알게 되서 좋고 열정적으로 하나라도 더 알려주시려고 하시는 분들도 존경스러웠다. 자손들에게 선조에 대해 가르치고 제사 지내는 법등 평생 모르고 살아갈 뻔 하다 여러 가지를 가르쳐준다는 것은 정말 좋은 취지라 생각한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끊기지 말고 계승됐으면 좋겠다. 0영

2박3일의 뿌리교육을 다녀오면서... 처음 갈 때는 과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불안하기도 하고 가서 수업을 잘 할 수 있을까. 떨리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오니까 생각보다 급식도 잘 나오는 편이고 모든 게 신기했다. 처음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산신님과 조상님께 제를 올렸다. 거기서 한 가지 의문점이 생겼는데 제복을 입은 사람들은 과연 무슨 기준으로 뽑았을까 하는 의문점이 들었다. 의문점을 뒤로 둔 채 다음 수업이 시작되었다. 잘 기억은 나지 않는데 기본예절들을 배운 거 같다. 예절수업을 마치고 저녁을 먹었다. 점심은 스파게티가 약간 덜 익은 채 나와서 딱딱했는데 점심때와 달리 저녁은 대체적으로 먹을 만했던 것 같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취침시간을 가졌다. 취침시간 때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다 적으려면 길어서 생략하고 인천이씨의 근본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어 기뻤습니다. 동0

2011년 6월 23일 인천이씨공도공파에서 주최하는 대학신입생 뿌리교육에 참여하였다. 처음 이 곳에 도착하여 사람들을 보았을 때 낯선 사람들이였지만 같은 핏줄이라 그런지 뭔가 친숙한 느낌이 왔다. 여기 오기 전까지는 재미없고 지루할 것 같았지만 예절교육도 참 재미있고 만난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뿌리교육에 참여하여 상품권도 타고 더 깊이 배울 수 있었고, 오천 원을 어디에 쓸지 고민이 된다. 비록 2박3일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 0성
선은 이곳에 와서 좋았던 점은 의외로 맛있는 밥을 차려주신 식당이었다. 야식으로 찐빵 주는 센스가 좋았다. 그리고 비품 같은 것도 준비를 잘 해놔서 챙겨온걸 거의 쓸 필요도 없을 정도였고 샤워장도 수압이 약한 것만 빼면 온수도 잘 나오고 좋았다. 그러나 잘 때는 침구의 수가 부족하였고, 밥 먹을 땐 자리가 부족해서 천막을 쳤는데 천막 틈으로 비가 샜다. 수업은 쉬는 시간 없이 2시간 이상씩 했는데 강의 내용을 들어보면 했던 말을 반복하기도 하고 책 광고 등 사적인 이익과 관련된 이야기로 상당히 시간을 많이 잡아먹기도 했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가능하면 강의시간을 1시간 내외로 줄이고 석식 이후엔 자유 시간을 주고 하루 정도는 레크리에이션 강사를 초빙하든지 하면 조금 더 학생들의 호응과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 같다. 0식
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값진 경험을 하고 가는 것 같기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처음 캠프를 간다고 했을 때는 같은 인천이씨라고 해도 전국에서 모이기 때문에 같이 가는 사람 중 아는 사람도 없고 이런 취지의 캠프는 처음이기에 모든 것이 낯설고 걱정되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1박2일째의 저는 굉장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우선 자신의 근본을 알고 자신의 뿌리에 대해 이해하자는 취지부터 매력적이었습니다. 노예제도가 폐지되면서 돈만 있으면 자신의 족보를 고치는 일이 많아졌고 이로 인해 양반의 수가 급격히 증가해 현재에는 자신의 선조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이 없습니다. 항상 국사시간이나 역사를 배우는 시간에 저는 제가 양반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품었고 그것에서부터 시작해 저는 저의 근본에 대해 항상 궁금해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캠프에서 파주 목사공 할아버지에 대한 내력을 아는 등 우리 가문의 역사에 대해서 깊게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저희 종회가 훌륭히 유지되고 있다는 점과 종회의 규모에 대해서도 알고 놀라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에게 뿌리교육을 간다고 했을 때도 후손들에게 우리 가문의 역사와 근본, 선조들의 업적과 정신을 본받게 하고 알려준다는 점에서도 굉장히 저를 부러워했습니다. 다른 가문에서는 이렇게 대대로 교육하고 물려주는 것이 드물어 보였고 거기서 저는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책임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인천이씨로서 가문에 먹칠을 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반대로 제 뒤에서 저를 응원해주시는 든든한 후원자가 생긴 것 같아 든든한 기분도 들었습니다.  여기서 열심히 배우고 우리 가문과 종회를 유지하고 빛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것에 대해서 굉장히 자부심을 느끼고 이 자부심을 후손들 역시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듭니다. 또 학식이 깊으신 분들 밑에서 강연을 듣는 게 뜻 깊었습니다. 그분들이 저희 가문이라는 게 자랑스러웠고 존경스러웠습니다. 앞으로는 여기서 배운 것을 토대로 종회 행사에도 참가해보고 싶고 함께하고 싶습니다. 선0
한 학기를 끝내고 휴식을 취할 때 쯤 떠나게 된 인천이씨공도공파 뿌리교육. 실질적으로 아버지께 들은 바가 전부였기 때문에 내 자신의 뿌리를 찾는다는 것이 새롭고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여러 지역에서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대학 신입생들이 자신의 뿌리에 대해 알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긴 여정을 했다. 날씨도 날씨인 만큼 모든 게 지치고 힘겨웠지만 같은 피가 흐르는 친구들과 함께 그 길을 걷고 배우니 조금도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다들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왔고 그 결과는 천차만별이었다. 처음에는 나름 사범대학에 진학 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졌었는데 내 자신이 그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것에 얼굴이 붉혀졌다. 그렇지만 학력을 떠나 다들 한마음으로 친해지고 서로의 마음을 공유하면서 이렇게 주어진 시간과 상황에 충실해야 갰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도 그저 내 앞길만 바라보고 내 입장만 생각해왔었는데 나 외에 다른 사람들과의 생활과 교류를 통해 좀 더 배려 심을 배우고 이타적인 마음으로 한층 더 가까워질 여지를 만들 수 있었던 같아 보람 있었다. 또한 우리의 시조인 이허겸을 비롯해 공도공파의 첫 시작 물꼬를 튼 역사적 인물, 오천 이문화 조상에 대한 깊은 이해뿐만 아니라 우리 인천이씨가 정확한 문헌에 근거한 씨족임에 강한 자부심을 느끼게 되었다. 그동안 내가 아버지께 간간히 들어온 내 뿌리에 관한 흩어져있던 모든 정보들이 박사님들과 저자와의 만남을 통해 마치 톱니바퀴의 이들이 맞물리듯이 빠르게 머릿속에서 돌아가는 듯 했다. 그리고 가장 감명 깊게 들은 강의에서는 아직 대학생활의 초짜인 우리들에게 주옥같은 훈계와 앞으로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들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 늘 학점관리에만 급급하고 등록금 문제만 생각하는 우리들의 현실을 돌아보게 하고 학업 증진에 힘쓸 수 있는 동기부여를 해 주셨다. 또한 내 자신이 그동안 내 인생에 있어서 열정을 쏟고 진정으로 노력한 적이 있었던가. 반성하게 되었다. 그래서 하루 빨리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오래전부터 나는 후진양성을 위해 힘쓰는 훌륭한 영어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기 때문에 그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정진하는 것 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므로 하루가 다르게 발전할 수 있도록 방학을 잘 계획하여 심혈을 기울이고 채찍질을 하면서 나아갈 것이다. 이 뿌리교육을 통해 그야말로 뿌리 깊은 나무로서 성장하도록 나의 정체성을 찾고 더욱더 잔뿌리들을 뻗쳐나가며 그 기틀을 탄탄히 마련할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어떠한 시련에도 굴하거나 꺾이지 않고 李씨 문중의 영광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튼튼한 나무 李0瓊으로 거듭날 것이다.  0경
천이씨 가문의 입장에서는 이문화 할아버님이 어느 누구보다 중요한 인물이 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여기 와서 모든 것을 배우며 내가 알지 못했던 것과 알고 있던 것을 좀 더 정확히 알았고 인천이씨가 이러한 일을 했고, 옛 조상들이 어떤 분이 있는지도 여기 와서 처음 알았다.  인천이씨와 김해김씨, 허씨의 관계도 알았고 무슨 종파 이것이 다르면 같은 친척이 아닌 다른 친척인줄 알았는데 종파라는 것을 알고만 있고 무시하고 다 친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기의 몇 세, 몇 대 이런 것의 의미도 알았고 친척의 촌수도 헤아릴 줄도 알게 되었다. 또 오천제에서 제사(?) 지낼 때 옛날의 제사 방식을 봐서 색다른 경험이었고 제복의 모습과 입는 법, 무엇을 입어야 하는지도 정확히 알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제사 지낼 때 술 따른 헌관, 사회 보는 집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오신 어르신 분들이 모두 다 높으신 분이라서 신기하고 같은 친척이라 뿌듯했던 느낌이 들었다 . 대학생활에 대해서 알차게 들었고 학교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꾸며 가야 할지도 알게 되었다. 앞으로 남은 3년 반 동안 대학 생활을 배운 대로 생활할 것이고, 어떻게 살아갈지도 뚜렷하게 정하여 잘 살아나갈 것이다. 영0
소 종친회를 고리타분한 가문회의 쯤으로 여기던 나에게 뿌리교육은 이번 여름 신선한 충격이었다. 먼저 가문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에 힘쓰시는 분들이 많았다는 점에서 내가 평소 나의 뿌리에 무관심했던 것에 대해 반성하게 되었다. 또 혈연이라는 좋은 인연을 잊고 살았는데 한자리에 모여 교육을 받고 2박3일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동안 함께 생활하다 보니 없었던 정도 생기는 것 같아 뿌듯하다. 또한 열정적인 교수님들의 강의도 인상 깊었다. 국제관계학을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특히 이재도 교수님의 말씀이 와 닿았다. 현재 미국 주도의 세계정세 속에서 한국인으로서 취해야 할 자세는 무엇인지, 또 인천이씨로서 우리 가문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허철회 교수님 말씀대로 다른 역사를 알기 전에 나의 가문의 역사를 먼저 아는 것이 우선인 것 같다. 인천이씨만의 자랑스러운 교육을 받은 것이 뿌듯하다. 무엇보다 평생 살며 다시는 못 볼 수도 있었던 같은 인천이씨끼리 한자리에 모여 교육을 받았다는 점이 뜻 깊었다. 0원
2박 3일 동안 같은 뿌리들과의 동행은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는 설렘과 그 사람들이 같은 혈족이라는 기대감에 사로잡혀 첫 발을 띄었다. 서로 어색한 면은 있었지만 같은 피라서 그런지 친근함과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한명씩 알아가며 뿌리의 줄기를 이어 갈 수 있었다. 친구이자 친척이며 앞으로 사회를 이끌어 나갈 그들의 듬직함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렇게 그들과 짧게나마 함께 같이 생활하고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크나큰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오천교육관에서 교육을 받으며 많은 것을 체험하였다. 실제로 제사를 행하는 것을 새로운 체험이 아닐 수 없었다. 항상 어른들을 뒤에서 지켜만 보았던 나는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예절과 의미가 담겨져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 교육관에서 지내면서 많은 강의도 들었다. 이 모두가 의미심장한 것들 이였고 이로 인해 들어올 때와 나갈 때의 나 자신이 달라졌다는 것을 몸소 느꼈다. 이번일로 인해 지난 과거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지난날 동안 무엇을 하며 무엇을 위해 살았나. 심사숙고를 해본 결과 반성만 되풀이 하였다. 대학 입시란 객관적인 목표아래 학원에서 국. 영. 수를 되풀어 공부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강의 중 성생님들이 묻는 질문에 어리둥절해 했고 다름 아닌 나의 조상에 관해 무관심하였던 내가 창피하였다. 강의를 들으면 들을수록 나의 조상님들이 존경스러웠고 내가 인천이씨라는 것에 크나큰 자부심을 얻게 되었다. 우리 조상님들께서 이루어 내신 업적은 대단하고 자랑스러울 따름이었다. 학원에서 보낸 수많은 나날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값진 것들이었고 무엇보다 이제 내가 누구이며 누구의 자손이라고 당당하게 말 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값진 대학생활’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해주신 이재도 할아버지의 말씀에 큰 영감을 얻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나태한 생활을 반복하였던 나 자신을 발견하였고 이러한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신 것에 크게 감사할 뿐이다. 이 강의로 인해 목표의 중요성을 깨닫고 나아가 미래를 바라보는 비전을 갖게 되었다. 고통이 없으면 얻을 것이 없을 것이라는 격언을 본받아 더 이상 후회하지 않는 미래를 개척해 나갈 것이다. 이번 인천이씨 뿌리교육은 정체 없이 앞만 보고 달리던 나의 대학생활에 쉼터가 되고 활력소가 되었으며 꿈을 위한 지침이 되었다. 같은 뿌리이자 친구인 학생들과의 시간도 즐거웠고 이 모든 것을 주최하고 수고해주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0택
는 저의 시조가 이허겸 할아버지이시고 제가 34세손이라는 것을 제외하고 인천이씨의 관한 것은 전혀 몰랐었습니다. 인천이씨의 관한 것에 지식이 없는 채로 이 뿌리교육에 참여하였습니다. 첫날에는 예절에 관한 것에 배우고 고유제라는 제사를 지냈는데 솔직히 지루하고 따분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교육을 왜 하러왔는지’, ‘장학금만 아니었으면 안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틀째 인천이씨 공도공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저의 뿌리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또, 대학생활 잘하기 위해서 높은 이상을 가져야 한다는 말과 책을 읽어 교양을 쌓고 전공공부에 힘을 써야한다는 말씀 등 유익한 많은 말씀을 해주셨고 정말 듣기 어려운 명 강의를 들어서 후회되지 않은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0범
음에 다들 처음 보는 사람들이고 낯선 환경이어서 많이 어색했습니다. 첫날 고유제 하기 전에 이용하 지회장님께서 고유제에 직접 참여하는 애들을 가르치시고 한 사람, 한사람마다 맡은 역할을 가르쳐 주셨는데 처음 듣는 거라 새로웠습니다. 고유제를 직접 하러 오천재에 갔을 때 비가 와서 찝찝하고 빨리 실내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하지만 고유제를 하는 아이들이 옷도 차려입고 하는 것 보니 비가 와서 가까이서 보지 못한 게 아쉬웠습니다. 또 예절지도 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는데 평소에 잘 몰랐던 절하는 법 등을 알게 되어 좋았습니다. 다음 날 많은 강의를 해주셨는데 그 중에 인천이씨의 역사에 대해들은 강의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동안 인천이씨 이면서 몰랐던 역사와 고려시대 때 가장 활발한 활동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역사 속에 인천이씨가 많은 업적을 세운 것 같아 자랑스러웠습니다. 저 또한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박3일이라는 짧으면 짧고 길다 생가하면 긴 시간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다음 해에도 그 다음 해에도 신입생들이 이 뿌리교육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비가 와서 실내에서만 있었지만 다음번에 뿌리교육 때는  실외활동도 한다면 친목도 쌓고 많은것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뿌리교육을 하면서 재미있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했지만 유익한 체험을 받고 간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수0


 

 버지의 권유로 뿌리교육을 받기 위해 집을 나섰다. 혼자서 기차를 타고 낮선 타지를 찾아 오는 게 나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교육관에 도착하니 이미 내 또래의 아이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어색함 속에서 교육을 받고 식사를 했다. 나와 같은 뿌리를 가진 아이들이 전국에서 다 모이니 신기하게 느껴졌다. 나는 서울에서 온 주연이라는 아이와 친하게 지냈다. 오천 교육관은 생각했던 것 보다 크고 깨끗했다. 우리는 고유제와 산신제를 지내기 위해 오천재로 갔다. 우리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오천 이문와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기 위해서였다. 오천재는 전통의 한옥 형식이었는데 주변 경관과 함께 어우러져 전통 한옥의 미를 한껏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산신제를 지낼 때 집례라는 역할을 특별히 맡게 되었는데 제복까지 입고 진지하게 임했다. 평소 집안에서 할아버지께서 제사를 지낼 때나 하던 일을 내가 하게 되니 내가 어엿한 어른이 된 것 같았고 이러한 전통적인 행사를 앞으로도 책임지고 해야겠다는 의무감도 들었다. 만남의 광장 시간에 뿌리교육을 하시는 할아버지 분들을 소개받고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들을 위해 이렇게 교육하는 시간을 가지고 장학금을 주시는 종친회분들이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자신의 가문과 뿌리에 대한 애착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내 자신의 뿌리에 대해 알아보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이러한 시간들이 인생에 있어서 한번 쯤 경험하는 것도 중요한 일인 것 같다. 지0
6월 23일 이곳에 처음 도착하여 모든 아이들이 같은 옷을 입고 동영상을 보고 있는 모습에 처음에는 낯설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옷을 갈아입고 그곳에 앉으니 다 같은 아이들 같았습니다. 처음에는 ‘뭐하는 곳이지? 귀찮아~’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비가 계속 와서 고유제를 지낼 때도 비 피하기만 급급하고 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어색했던 곳에서 이야기를 서로 나누고 하는 것에 조금은 맘이 편해졌습니다. 24일 날 일정표에 있는 강의들을 보고 절망했습니다. 원래 국사, 사회를 싫어하는 탓에 흥미를 가지지 못했고 몸도 피곤해져 안 좋았습니다. 첫 시간에는 정신도 없이 멍 했습니다. 두 번째 시간에 제일 열심히 들었습니다. 국사, 사회 그런 것을 싫어하는 저로써는 의문이 들었지만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나머지 시간에도 수업을 듣고 이젠 잠자는 시간이 되어 이것을 쓰고 있습니다. 내일이 되면 이곳을 떠나겠지만 뿌리교육이란 타이틀을 걸고 한 수업 잘 들었습니다. 0진
음 집을 나와서 여기 올 때 날씨가 너무 좋아 여행 온 기분으로 왔는데 꽉 찬 수업을 듣는다고 조금 힘들기는 했지만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어서 좋았고 인천이씨 가문에 대해서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이렇게 대학교 신입생들을 모아서 뿌리교육을 하는 집안은 잘 없는 것 같은데 이렇게 우리 인천이씨가 이런 뿌리교육을 하니까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계속 이런 자리가 마련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수업들 중에도 올바른 대학생활에 대해서 수업을 들었던 게 가장 기억에 남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목표(?) 꿈(?)을 준거 같아서 좋았습니다. 오늘 아침에 할아버지 산소에 갔던 것도 조금 춥긴 했지만 아침 산행해서 좋았습니다. 제 동생도 대학교 1학년이 되면 꼭 와보라고 해야겠습니다. 가0
안 오천교육관을 처음 친구를 통해 들었다. 인천이씨 신입생 대상으로 뿌리교육을 한다고 하는데 처음에는 그냥 뭔가 싶었다. 우리 동네는 과거에 인천이씨들이 많이 살았던 곳이라 함께 온 친구들이 많았다. 기차를 타기위해 대구역으로 갔는데 거기서 잠시 사고가 있었다. 기차를 놓쳤다. 당황한 우리는 시간 안에 도착하지 못하면 어쩌나 마음 졸이며 바로 다음 기차를 타고 천안에 무사히 도착했다. 처음 교육관에 도착해서 의자에 앉았을 때 분위기는 서로 낯선 얼굴에 서먹서먹한 분위기였다. 점심을 먹고 난후 환영사로 교육을 시작하였다. 비가 많이 오는 궂은 날씨에도 많은 교육생이 참가하였다. 또 많은 분들이 우릴 환영해주셨다. 고유제를 하는 방법을 알아보기 위해 각자 역할을 정하고 오천재로 향했다. 오천재에 대한 설명을 듣고 고유제를 할 때 입는 옷도 살펴 본 뒤 고유제를 시작했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좀 더 참여할 수 있었지만 멀리서 지켜봐야만 했다. 마이크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진행과정을 제대로 듣지 못한 점도 아쉬웠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예절교육을 시작했다. 예절교육은 인사예절에 대해 중점적으로 배웠다. 일반적으로 여자는 오른손 남자는 왼손이 위! 여러 번 들은 적이 있었지만 매번 헷갈렸는데 이번 기회에 제대로 머릿속에 기억되었다. 저녁을 먹은 후에 다시 교육장으로 모였다. 일정표에는 만남의 광장이라고 적혀있었다. 만남의 광장?   서로 친해지는 시간을 갖는 것인가? 의문을 가지고 교육은 시작되었다. 이번시간은 질문을 받고 궁금했던 점을 해결하는 시간이었다. 처음에 애들 모두 질물을 하지 않고 서로 눈치만 살폈다. 질문을 하는 사람에게 상품이 주어진다고 하니 조금씩 질문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시설의 문제점도 보완하고 그동안 궁금했던 점도 풀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저녁이 되어 씻고 잠자리에 들 시간이었다. 그때 문제가 생겼다. 여자아이들 방에 벌레가 너무 많아서 어찌할 줄을 몰랐다. 교육장은 원래 남자아이들이 자기로 돼 있었는데 결국은 교육을 받는 모든 아이들이 교육장을 정리하고 그곳에서 잠을 청했다. 처음 만났을 때의 어색함이 많이 풀린 듯 보였다. 노래도 틀고 애들끼리 게임도 하고 많이 친해진 듯 보였다. 둘째 날 아침잠을 조금 설친 나는 빨리 눈을 떴다. 아침에 원래 하려던 교육을 해주시기로 한 분의 피치 못할 사정으로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잠시 우리나라에 대한 여러 가지 설명을 듣고 인천이씨의 파와 뿌리에 대해서도 교육을 받았다. 거의 대부분이 한자로 적혀있었고 한자공부의 필요성도 조금은 생각하게 되었다. 서계서원이라는 것이 서변동에 있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는데 깜짝 놀랐다. 값진 대학 생활이라는 주제로 교육도 받았다. 여러 말씀을 해주셨는데 뭔가 가장 와 닿는 내용들이었다. 스스로 하는 방법에 대해 조금씩 배워가야겠다. 또 학교 교수님께서도 항상 말씀하신 독서와 제2외국어에 대해서도 충고해주셨다. 우리가 좀 더 올바르고 바람직하게 성장하길 바라시는 것 같았다. 저녁을 먹고는 한국의 전래민요에 대해 알아보았다. 낯설지 않은 소재 탓인지 하루 일정의 마지막이라서 그런지 많이 졸리지 않았다. 오랜만에 아리랑도 불러보았다. 솔직히 이틀 동안의 교육이 재밌지만은 않았다. 처음 들어보는 단어들도 많았고 접해보지 못한 것들이었기 때문에 이해도 안 되는 점이 많았다. 하지만 잘 모르는 것이라도 인천이씨의 가문에 대해 한번 들어보고 이렇게 모이는 일이 쉽지 않은데 다 같이 모여 교육을 받은 것 자체가 다른 아이들은 겪지 못할 특별한 경험이었다. 명0
천이씨공도공파종회에서 주최한 19기 대학신입생 뿌리교육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 교육에 참석하기 위해 한 달 전쯤부터 신청하였고 일주일 전부터 기대감이 풍선처럼 오는 부풀어 올라 터질 것 같았다. 당일 아침부터 준비하고 씻고 집을 나섰지만 오는 길은 비가 폭포수처럼 쏟아 부어서 천안에는 비가 올까 안 올까 하는 걱정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천안IC에서 내려서 걸어오는 길은 길이 물에 잠기고 차가 지나가면 물이 날 집어 삼킬 만큼 올라올 정도로 비가 오는 것이었다. 처음 강당에 왔을 때 열쇠를 받고 내 사물함에 옷을 입었을 때는 드디어 시작이구나 하고 설레었다. 조금 늦어서 강당에 들어왔을 때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들어와서 서로 서먹서먹한 관계로 앞에 틀어놓은 영상을 시청하고 있었는데 앞에는 절하는 방법과 남은 동, 여는 서. 남동여서라는 것과 공수하는 방법, 계수배, 돈수배, 공수배라는 절의 다른 3가지 방법과 자리배치에 관한 것을 보았다. 그 동영상이 끝나고 예절교육시간이었다. 우선 동영상에서 본 것처럼 제를 지내는데 필요한 역할들을 정해주시고 기본적인 예절에 대해서 복습하는데 생소한 것이 많았다. 우선 역할부터 우리 집이랑 달랐다. 내가 장손이고 우리 집이 큰집이라서 제사를 자주 접하지만 모든 게 생소한 점이었다. 특히 세배문화부터 이질적이다. 그 후 제를 지내는데 역할을 담당하는 쪽하고 그냥 제를 지내는 쪽하고 분류하고 연습을 하는데 처음으로 고유제라는 것에 제대로 알게 되었다. 새로운 것을 알게 된 느낌은 상큼했다.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은 대학생의 자세에 대한 수업이었는데 메인 모토는 꿈을 가져라 는 점이었다. 꿈을 가지고 No again, no pain의 정신으로 열심히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강의에서 또 하나 들은 것은 불행한 사람의 3가지 분류가 있는데 부모가 부가 많으면 안 되고 너무 어린 나이에 장원급제라면 안 되고 재주나 글을 잘 쓰면 책을 멀리한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가르침을 많이 받았었다. 특히 민속음악 시간에는 중국의 아리랑의 무형문화제 지령에 대한 이유와 그것이 가능한 점. 그에 대항해 국가나 학회에서 그것을 막는 이유나 대책에 관해서 물어보았고 그것에 대한 궁금증을 풀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그에 반해 우리의 조상에 관한 수업은 비교적 어려워서 좀 지루한 수업이었다. 중요한 수업이었지만 제대로 안 내용은 얼마 없는 것 같아서 아쉬웠다. 집에서는 김수로왕과 인도 공주와 결혼해서 뻗어온 것이고 공을 세워 왕에게 성을 하사 받은 것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 와서 배운 내용과는 좀 많이 달라서 당황했다. 2일 동안 여기 와서 좋은 추억이 되었다. 좋은 친구들도 사귈 수 있었고 재미있고 유익한 이야기도 많이들은 것 같다. 0영
에게 누나가 있어서 오래전부터 뿌리교육에 대해 알고 있었다. 신청서 낸다고 재학증명서 땔 때까지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막상 며칠 전이 되니 오기가 싫어졌다. 나는 더구나 학교 MT랑 날짜가 겹치고 여기오니까 계속 비만 오고 안 좋았다. 여기에 와보니 의외로 규모도 크고 시설도 좋아 놀랬다. 대구에서 성당 주변 아는 사람들이랑 왔는데 지내다 보니 친해지고 같이 어울리니까 재미도 있었다. 여기 수업을 받으면서 솔직히 졸리는 것도 많았다. 하지만 뿌리수업은 조는 거 없이 끝까지 들었다. 뿌리수업을 들으면서 우리 가문의 유래를 제대로 알게 되었고 옛날부터 있는 집안이라는 점에서 자부심도 새겼다. 첫날 강의는 졸았던 게 좀 많았는데 둘째 날부터는 연로하신 분들의 열정적인 강의로 인해 졸음도 오지 않았다. 교수 분들께는 나이도 문제되지 않는 듯 했다. 교육을 통해 좋은 것들을 배웠다. 평소에 알고 깊은 문제들도 해결했고 장학금이나 시설 등을 보고 우리 공도공파의 재력에 다시 한 번 놀랬다. 무엇보다 이번교육을 통해 우리 인천이씨에 대한 자부심이 생겼다. 이렇게 좋은 교육을 기획해 주신 어르신들에게 감사드립니다. 0수
리교육을 오기 전 저는 저의 성씨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많지 않았습니다. 저의 아버지께서 뿌리교육에 대해 소개해주시고 참가를 권유해 주셔서 저도 저의 뿌리에 대하여 알고 싶은 마음에 뿌리교육 참가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에 오기 전 같이 뿌리교육에 참여한 친구들과 잘 지내지 못하게 될까봐 걱정을 하였지만 저의 걱정과는 달리 좋은 친구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와서 배운 예절들과 저의 성씨의 시조부터 차례로 배워서 너무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이곳에서 배운 절하는 방법으로 앞으로 어른들을 뵙는다면 인사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저의 성씨의 역사에 대해 공부를 하여서 누군가가 저의 성씨에 대해 묻는다면 성명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고 저의 성씨에 대해 자부심도 가질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저의 동생들에게도 뿌리교육에 대해 설명해주고 참여도 권유하고 싶습니다. 2박3일의 짧은 시간동안 너무 많은 것을 배우고 가서 보람된 시간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서도 우리 문중에 관한 책도 많이 읽어서 저의 문중에 대한 지식을 늘려가도록 하겠습니다. 열정적으로 강의해주신 분들도 너무 존경스럽고 저의 성씨에 대한 교육을 시켜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저도 이곳에서 배운 지식으로 동생들에게 많이 전해주겠습니다. 0향
선, 뿌리교육이 19기까지 해 왔다는 게 대단히 자랑스럽습니다. 뿌리교육 자체를 안 하는 집안이 대다수인데, 자부심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저희에게 강의 해주신 모든 분들이 좋은 강의를 해주셨지만, 특히 저는 이재도 교수님의 강의가 가장 와 닿았습니다. 많은 점을 느꼈지만 그 중에서도 값진 대학생활에 대해 설명해 주실 때 이렇게 마냥 놀고 있을 때가 아니구나, 값지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2박3일 동안 조상들에 대한 공부와 예절교육을 받음으로써 조금 더 예의 바르게 되었고 제 뿌리가 무엇인가를 알게 되어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0영
소에 제 조상님이나 뿌리에 대해서 알고 싶었지만 그럴 수 있는 여건이 마땅치 않았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나의 정체성을 찾은 것 같다. 친구들에게 뿌리교육을 간다하면 다 그게 뭐냐는 식으로 묻고 그런 자체를 모르는 친구들이 많은데 우리 인천이씨는 이런 교육을 2박3일이나 받을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같은 대학교 1학년이라서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고 얘기를 나누면서 더 친해질 수 있는 계기도 마련할 수 있는 장이었던 것 같다. 천안까지 오기 매우 먼 거리였지만 그만큼 온 보람이 있었다. 가의도 유익한 정보가 많았고(조금 졸긴 했지만) 다 같이 모여서 교육 받는 자체가 다른 집안들은 경험하지 못한 소중한 경험이었다. 평소 인천이가를 만나지 못했는데 여기서 나의 가깝거나 먼 친척을 만나고 친해질 수 있는 계기였던 것이 무엇보다 좋았던 것 같다. 강사 분들, 교수님들의 열정적인 강의가 너무 인상 깊었고, 계속 이어나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0훈
리교육이란 말을 처음 듣고서 부모님께 짜증을 냈었다. 나의 20살에 무슨 뿌리교육이냐면서 그런 건 어릴 때나 하는 거지 하면서.. 그렇게 짜증을 내곤 내 방에 들어와 인천이씨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그냥 대충 설명되어져 있겠지 싶어서 들어가 보니 나도 모르게 한 시간 넘게 그 홈페이지에 쓰인 글을 보고 있었다. 약간의 충격이었다. 내가 내 자신에 대해 이렇게 모르고 있었다니... 조금 부끄럽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음날 다시 부모님께 가서 말씀드렸다. 갔다 오겠다고..  그리곤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도착하였고 내가 생각했던 건물과 시설보다 최신식이라서 놀랬다. 어르신들이 들어오셨고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우리의 뿌리 조상에 대해 설명하셨고 궁금한 것에 대해 질문도 받아주셨다. 홈페이지에서 본 글과는 또 다른 정보를 알 수 있었고 우리 인천이씨가 상당히 많은 다른 성씨와도 관계가 있었다는 것과 조선시대엔 우리 가문이 상당했다는 것에 놀랐다. 왜냐하면 주의에 같은 이 씨한테 무슨 이 씨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이 전주 이 씨이거나 이천 이 씨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천이씨가 많은 줄 몰랐다. 우리 가문 애들만 70명이 있으니 왠지 모를 친근감이 생겼고 또한 신기했다. 물론 조금은 지루한 수업도 있었지만 난 특히 두 번째 날 대학생활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수업해주신 어르신께 너무너무 감사드린다. 아직도 그 수업이 생생하다. 그만큼 나에게 와 닿았고 나의 삶에 tuning point가 될 만한 수업이었다. 정말 내가 지식이 부족하고 책을 많이 안 읽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집에 돌아가서 꼭 ‘도쿠가와이어샤스’라는 책을 읽어보아야겠다. 나도 일본에 대해 관심이 많다. 일본어도 배웠었고 일본문화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2시간 30분에 걸친 뿌리수업도 인상 깊었다. 본인이 쓰신 책에 대한 수업이었는데 국문학에 상당히 관심이 많으시고 열정이 대단하신 것 같다. 그리고 뜻밖의 민요수업에 즐거웠고 우리 뿌리 중에 이재욱이라는 유명하고 훌륭하신 분이 계서서 뿌듯했다. 이제야 조금 나의 조상 그리고 나에 대해 알았다. 이걸로 끝이 아니라 더 알아보고 더욱 어깨에 힘이 들어가도록 공부해야겠다. 창0
리교육을 시작한지 벌써 하루가 지났다. 하루 동안 공도공파에 대한 것을 중점으로 여러 가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제일 처음 여길 찾아올 때는 힘든 점이 많았다. 택시시가님이 잘 모르시는 점도 있었고 구성 신성아파트에서 내려서 약도 가지고는 찾기가 조금 힘들었다. 올라오는 길에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찾아올 수 있었지만 12시가 다 된 시간에야 도착을 했다. 하지만 점심을 먹고 나서 교육을 시작하고 나니 약간 적응할 수 있었다. 그 이후 수업할 때 잠들기도 하였지만 유익한 것을 많이 배웠다. 공도공할아버지의 일생, 공적 등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만 즐겁다는 기분을 들게 할 만한 것도 있었으면 좋겠다. 많은 것을 배워서 뿌듯하긴 하지만 무언가의 아쉬움이랄까?  이번 교육으로 인해 인천 이 씨라고 어디 가서 자신 있게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 너 어디 이 씨 묻는다면 ‘인천이씨공도공파 37세’라고 말할 것이다. 인천이씨를 대표하시는 분들이 누가 있냐고 물으신다면 이허겸 할아버지를 1대로하여 이자연, 이문화 등 많은 위인들이 있다고 말할 것이다. 또 이번기회로 이자겸 할아버지에 대해서 들을 수 있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또한 나도 성공하여 내 후손들이 이렇게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기회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교육이 끝난다 하더라도 이 긍지를 잃지 않겠다. 2박3일 동안 행복했습니다. 개선을 원하는 것.  1. 찾아오기 쉽게 표지판 설치를 원함. 2. 유익한 시간도 좋지만 유쾌한 시간도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인천이씨 후손들이 방문하여 좋은 것 많이 배워갔으면 좋겠습니다. 0호
2박3일 동안 몰랐던 친구들도 알게 되어 의미 있고 재미있었습니다. 정0
소에 ‘나의 조상은 누구일까’라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 댁에 가면 나를 앞에 앉혀놓으시고 “너는 38대손이다”라고 말씀하셨던 할아버지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나의 이 씨가 인주이씨(=경원이씨, 인천이씨)라는 것을 알고, ‘이자겸’이 단지 자신의 욕심을 충족하기 위해 난을 일으켰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더욱 깊은 뜻이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시조가 “이허겸”이라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누구인지, 어떤 일을 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그때 마침 뿌리교육이 있다는 말을 듣고 신청하였다. 공도공파 이문화 할아버지가 우리의 직계라는 것은 처음 알았다. 이름도 생소했고, 오천재라는 것도 낯설었다. 고유제를 했을 때는 조상님께 어떻게 예의를 차려서 절을 하는지 알게 되었다.  또한 예절지도를 받았을 때는 공수가 무엇인지, 여자·남자의 자세 차이가 무엇인지, 또 여자는 양반 집안에서 마님으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는 것도 새롭게 알았다. 강의가 모두 끝나고 위집하기 전까지는 멀지만 같은 피를 나눈 친척들하고 담소를 나누며 친하게 지냈다.  두 번째 날, 인천이씨 역사를 깊게 배우면서 우리의 직계는 이자겸이 아니라 ‘이자상’임을 알았고, 이문화 할아버지의 공로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엄청난 또 소문난 위인은 아닐지라도, 우리에겐 그 누구보다도 멋지고 소중한 조상이시다. 다양한 지역에 분포하는 인천이씨를 이렇게 한 곳에서 만나기 힘들 것이다. 이번 모임(종친회)을 통해서 많은 친척들, 친구들을 알게 되어서 뿌듯하고, 조상님들에 대해 인천이씨에 대해 자세히 알게 돼서 더욱 좋았다. 0진
의 뿌리... 뿌리교육을 시행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에야 문득 내가 나의 뿌리에 대해 잘 모르고 있거니와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갑자기 ‘나’라는 존재가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나의 기원이 존재한다는 것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뿌리교육을 통해 더 자세히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교육수강에 신청하게 되었다.  천안역에 내려서 안내문에 나와 있는 찾아오는 길 설명을 읽고서 찾아가려 했지만 설명이 너무 애매모호해서(오른쪽 편 버스정류장을 이용하세요. 등..) 제대로 이해할 수 없어서 택시를 타고 말았다. 흑흑..   이 점은 다음번엔 보완해서 더 충실한 설명을 통해 학생들이 잘 찾아올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첫날부터 비는 주룩주룩 내렸지만 부리에 대해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강사님들의 열정은 대단했다. 공수하는 법과 절하는 예절, 행동거지에 대해 배웠고, 말씨와 몸가짐도 그에 버금가게 중요하다는 것 또한 다시 한 번 새기게 되었다. 그 후에, 전통 예복으로 갈아입은 후 공도공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고유제를 올리는 식을 경험하게 되었다. 옷이 조금 덥긴 했으나 전에 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이었고, 또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게 해준 경험이기에 뜻 깊었다. 인상 깊었던 것은 제를 다 올리고 마지막에 사람들이 음복을 하는 절차이다. 그것 또한 음복예절이라고 해서 꼭 해야 하는 예절에 포함된다고 하니, 조상님들이 참 인자하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째 날에는 비가 더 세차게 내리는 가운데, 하루 종일 많은 양의 강의를 들었다. 훌륭한 교수님들께서 뿌리에 대해, 오천 이문화 할아버지에 대해 열강을 해주셨고 감기는 눈을 애써 들어 올리며 들은 수업은 신기하게도 머릿속에 쏙쏙 들어왔다. 가장 인상 깊었던 강의는 이재도 교수님께서 수업하신, 인생에 도움이 되는 말씀들. 대학생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떤 대학생활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강의다. 생활목표와 꿈을 자지라는 말. "plain living, high thinking" 즉 평범한 생활에 높은 이상을 가지라는 명언이 머릿속에 맴돈다. 또한, 나는 이제껏 나의 등록금, 우리나라의 대학 등록금이 비사다고 생각하고 마야, 정의롭지 못한 대학이라고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나의 반년 대학생활을 돌이켜볼 때, 이런 식으로 하면 등록금이 비싼 편 인개 당연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공부하고 싶지만 부담을 느끼는 학생들을 위해 거품 등록금을 내리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등록금이 싸다고 느껴질 정도로 열심히 하고 싶다. 내 분야인 영어는 필수적으로 마스터하고, 제2외국어 등 넓고 깊게 공부하는 것에 나머지 대학 생활을 보내야겠다고 느끼게 되었다. 0윤
음에는 2박3일 동안 무엇을 배우고 얻을 수 있을까 궁금하고 의문이 들었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이곳에서 많은 것을 얻어갔다. 평소에 무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내가 정체성을 찾게 되었고 훌륭한 업적을 이루신 조상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구체적인 삶의 계획을 세워 나도 가문의 영광이 되고 싶어졌다. 특히 국사편찬위원장이셨던 교수님의 이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전에 인천이씨 가문의 치부를 연구를 통해 덮어줄 수 없겠냐는 제의를 받았었는데 거부하셨다고. 이유는 우리의 뿌리에서 배울 점은 배우고 반성할 점은 덮어놓지 말고 집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이렇게 훌륭하시면서 양심 있는 학자분이 인천이씨이고 실제로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는 게 영광이었다. 또 이를 들으며 드는 생각은 앞으로 나는 행실을 똑 부러지게 해서 후손에게 반성해야 할 대상이 되지 말아야겠다는 것이다. 앞으로 인천이씨의 가문들이 길이길이 번창해서 19회,190회, 1900회....로 쭉쭉 이어가며 명문가문이 되길 항상 기도할 것이다. 주0
기 전에는 인천이씨와 관련된 역사만 가르쳐주시는 줄 알았다. 예와 절 같은 건 배우는지 몰라서 처음에 가르쳐 주실 때에는 당황했다. 어찌됐건 새로 좋은걸 배워가는 것 같다. 우리 가문과 관련된 역사를 배울 때에는 교수님이 굉장히 열정적으로 강의해주셨는데 열정적인 모습이 인상 깊게 남는다. 인천이씨와 관련된 역사는 이번기회에 꼭 알아두고 싶었는데 약간이나마 배우고 가서 다행이다. 아리랑 시간은 이번에 화젯거리가 되고 있는 만큼 유심히 들어보려고 했으나, 그렇게 열심히 듣지는 않은 것 같다. 그래도 민요에 대한 뭔가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 공도공 이문화 할아버지에 대해서 이야기만 듣다보니 왠지 엄청 멀게 느껴졌는데 뒷산에 묘소를 보고나니깐 좀 가깝게 느껴졌다. 2박3일 동안 많은걸 배우고 가는 것 같다. 0경
천이씨공도공파에서 주최하는 대학신입생 뿌리교육에 참여했다. 처음 이곳에 도착해서 설레는 마음으로 친구들을 기다렸다. 다들 처음 보았지만 같은 뿌리라는 것 때문인지 친근감이 들었다. 그동안 깊게 배울 수 없었던 예절에 대해서도 배웠고, 공도공 할아버지의 자손으로써 그 뿌리를 알고 역사를 배웠다. 하지만 짧은 시간동안 많은 걸 배워 큰 집중을 할 수 없어 아쉬웠다. 이곳에 올 때 많이 불편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건물도 깨끗하고 샤워 실도 있어서 참 좋았다.  그리고 밥도 잘 나와서 배부르게 맛있게 먹었다. 2박3일의 짧은 기간 동안 참 다양한 것들을 배우고 경험하여 정말 좋았고 이런 교육이 또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좋은 추억이 된 것 같다. 민0

2011년 6월 23일. 인천이씨 뿌리교육에 참가하기 위해 천안에 위치한 오천교육관에 왔다. 비도 많이 오고 집에서 오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려서 도착해보니 다른 친구들이 이미 교육을 받고 점심을 먹기 위해 줄을 서있었다. 나도 얼른 짐을 풀고 준비된 티를 입고 친구들과 밥을 먹었다. 밥을 먹고 다시 강의실에 와서 간단히 자기소개를 했다. 모두 처음 보는 친구들이어서 어색했는데 소개를 하고 나니 서로 조금 더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소개를 다하고 예절교육을 받았다. 예절의 정의와 절하는 법 등도 배우고 고유제를 지내기 위해 고유제를 지낼 대표도 뽑았다. 그러고 나서 다 같이 오천재로 가서 설명도 듣고 고유제를 지냈다. 건물이 생각보다 크고 멋있어서 놀랐다. 고유제를 지내고 나서는 우리 가문에 관한 강의를 들었다. 처음에는 조금 지루하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듣다보니 평소에는 몰랐던 새로운 사실들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다시 저녁을 먹고 어르신께 궁금한 것을 질문하고 건의사항 등을 이야기 했는데 모두들 친절하게 대답해주셨다. 그리고 이불을 깔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좀 하다가 잠을 잤다. 두 번째 날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강의를 들었다. 대학생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과 「오천 이문화 평전」이라는 책을 통해 우리 가문에 대해 더 자세히 배웠다. 저녁때는 아리랑에 관해 배우고 같이 노래도 불렀다. 아리랑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아서 좋았다. 2박3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새로운 친구들도 만나고 내가 속해 있는 가문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다. 앞으로도 우리 가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는 자세를 가져야겠다. 0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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