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공도공종회
작성일 2007-01-08 (월)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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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도사회복지대 떠나는 이동호 총장
현도사회 복지대 떠나는 이동호 총장

 

“가장 위대한 힘은 ‘사랑'이란 사실 여기서 깨달아…”

요즘 일본 서점가를 휩쓸고 있는 무라카미 류(村上龍·52)의 “13세의 Hellow Work'의 서문 중 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세상에는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 부자와 가난뱅이 등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두 종류가 있다”는 내용이다.

겐토샤(幻冬舍) 출판사가 간행한 이 책은 514종의 직업에 관한 안내서인데 지난해 말 발간되자마자 2개월만에 45만 부가 팔려 단연 베스트셀러가 됐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펴낸 이 책이 세대간의 구별 없이 모든 이에게 잘 읽히고 있는 까닭에 대해 “직업을 잘못 골라 고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반영하는 것 아니냐”는게 출판사 측의 말.
저자인 무라카미 류는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로 1976년 아쿠다가와(芥川)상을 받고 등단하여 ‘희망의 나라로 액소더스' ‘토파즈' 등 많은 베스트셀러 소설을 발표한 소설가이자 영화 감독.(우리에겐 ‘토파즈'를 직접 감독한 영화 ‘도쿄 데카당스'가 일본영화 개방이후 수입불허판정을 받은 첫 작품이어서 그의 이름이 낯설지 않다)

그렇다.
우리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 보다 ‘어쩔 수 없이' 일을 하는 사람이 더 많은 듯 싶다.
그래서 지친 표정들 때문에 가정과 직장과 거리가 어둡고 칙칙하다.
그들이 내뱉는 한숨소리와 ‘못해 먹겠다'는 자조 어린 탄식이 어둠처럼 밀려와 소시민들의 가슴을 옥죄고 이 시대를 씁쓸하게 한다.
그런데 예외의 사람들도 있다. 일의 좋고 나쁨이 아니라 무슨 일이고 손에 잡히면 ‘신나게' 해 내는 사람들- 그 중의 한 사람이 이동호(李同浩 (66)서울 서초구 방배4동 847-34 대우유로카운티401호) 총장일 것이다.

꽃동네 오웅진 신부가 설립한 ‘현도사회복지대' 2대 총장의 임기가 3월 6일까지여서 아직은 ‘총장'으로 불리나, 그 후부터 그의 호칭은 92년 내무부장관 이후 줄곧 불려지듯 ‘이 장관'으로 다시 불려질 것이다. 한파가 쓸고 간 2월 중순, 청원군 현도면 상삼리387 산기슭에 있는 현도사회복지대에 나타난 그는 마지막 총장실로 배달된 몇 통의 우편물을 챙기는 것으로 책상 정리를 마쳤다.

충북 영동군 양산면 원당리230에서 태어나 양산초-영동중-대전고-고려대-연세대 대학원을 나와 명지대서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대학원의 최고경영자과정(81년)과 서울대 행정대학원 정책발전과정(87년), 미국 하버드대 대학원 최고경영관리과정(94년)을 수료했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61년)고등고시 행정과 제정경제 합격(13회)으로 이듬해부터 재무부 사무관으로 출발한 그가 재무부차관보(86년) 관세청장(88년)같은해 재무부차관, 한국산업은행 총재(90년) 같은해 충북도지사, 내무부장관(92년) 전국은행연합회회장(96년)을 거치는 동안 ‘충청도 출신 인물'로 그는 언제나 ‘전국 구'였다.
가는 곳마다 일을 만들고 목표를 성취해 ‘황소' ‘탱크'로 불렸다.
그래서 희수(稀壽)가 아직 몇 해 남았는데 그의 약력서는 빈틈이 없다.
△경제 행정 △내무행정 △금융 △학계 △사회 △정치 등 각 분야가 총망라돼 있고 ‘고도산업사회 실현을 위한 장기대응 전략' 등 발표된 논문도 적지 않다.
그를 보면 언제나 활력이 넘친다.
검은 피부색과 단단한 턱뼈와 굵은 뼈마디가 황소쯤 끌었을 씨름선수 출신 같다.
함께 잠시만 있어도 하루의 시간관리를 명민하게 운용함을 알아낼 수 있다.
서울에 있어도 청주와 대전을 꿰고 지사실에 앉아서도 몸담았던 재무부의 옛 부하 직원을 챙겼다.
충청도 사람답지 않게 맡은 일은 적극적이었다.
그래서 세계 최대의 복지시설인 ‘꽃동네'를 세우고, 그 꽃동네를 지킬 사회복지사를 배출할 대학을 자신의 고향에 세운 오웅진 신부가 자신의 후임으로 ‘이동호' 라는 ‘다용도(多用途)인물'을 후임 총장으로 선택하는데 주저함이 없었을 것이다.
그가 2000년 3월7일 ‘총장'의 이름으로 취임했을 때 충청도 일각에선 ‘의외'라는 반응이었으나 그를 아는 경제-내무 행정-금융계 등에선 낯선 이름의 ‘현도사회복지대학교'가 오래지 않아 기반을 다지고 수면 위로 부상하리라는 기대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취임과 더불어 기존 대학교육과 차별화 된 교육과정의 특성화를 규정했다.

현도사회복지대는 무엇보다 사회복지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실습과 참여형 수업의 비중을 높이고, 사회복지 인접학문의 중첩적인 배열을 위한 복수전공제도와 교수진 구성 등 일반대학과는 다른 차별성을 확실히 했다.
그는 우선 그런 목표를 위해 학교설립의 종교적 배경과 효과적인 학교경영을 위해 대학재정의 안정적인 확보에 주력했다.
이 대학이 장학금 수혜율이 매우 높은 반면 등록금 의존율이 매우 낮은데도 부채가 없는 건전한 재정을 유지하는데는 오신부의 재단전입금의 제도적인 확보와, 이 총장의 대내 외적인 적극적인 설득과 외부 재원의 유치가 활발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총장은 재임 4년의 소감을 “매우 많은 것을 깨우친 기간이었고, 총장직함은 어떤 자리 보다 힘들었지만 보람 또한 컸다”고 결론지었다.

-무엇을 깨우쳤는가
“7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내가 처한 자리마다 정의(正義)롭고자 했다. 정의는 언제나 나를 당당하게 했고 명분과 입장을 세우는데 일관된 잣대가 됐다. 나와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생각해보니 그 정의는 때와 자리에 따라 그 모습과 색깔과 내용이 달라졌다. 정의의 한계도 있었다. 재무행정관료 때와 내무행정 관료 때의 정의가 다르고 산은 총재 때와 은행연합회장 일 때의 정의가 각각 달랐다. 그런데 이 곳에서 성직자들과 함께 일을 하다보니 정의가 가장 큰 힘을 갖는 게 아니었다. 가장 큰 힘은, 그리고 최후의 명분과 일관성은 ‘사랑'이었다. 사랑의 위대함이란 힘이 없는 듯 보이나 끝내 이기는 것이고, 이긴 후 조용한 것이어서 옷깃을 여미게 하는 것임을 확인했음이 무엇보다 큰 얻음이다”

-힘들었던 일은

“꽃동네에 관한 일들로 여러 날 밤잠을 못 이뤘다. 나에게 이 곳 일을 맡긴 오 신부에게 쏟아진 옳든 그르든 비판적인 여론들이 꽃동네와 우리대학에 미친 파장은 실로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오직 진실을 믿고 묵묵히 자기 본분을 다해준 분들께 삼가 경의를 표하고 싶다.”

-임기만료의 떠남이 홀가분한가, 섭섭한가.

“4년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다. 그러나 결코 긴 세월도 아니다.
 나는 언제나 일하는 즐거움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 곳의 색다른 일은 내 삶에 큰 무늬가 될 것이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 것인가.

“현재 맡고 있는 일들이 있어 심심할 수 는 없을 것이다. 가급적 책을 보며 일상을 유익하게 보냈으면 한다.
 소망이 있다면, 남북문제에 관련한 어떤 역할을 맡고 싶다.
 그동안의 경륜을 바탕으로 유용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정치 쪽 입문도 고려되는가.

“아니다. 한 때 민정당 전문위원(83년)도 했고, 민자당 보은 옥천 영동지구당 위원장과 중앙당 정책평가위원장도
 했다. 국회의원에 출마해 낙선도 했다. 아무래도 정치는 뜻대로 되는 게 아니어서 접기로 했다. 근본적으로 본인
 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한국의 정치풍토에선 정치인은 얼굴이 두터워야하고, 거짓말을 해야하고,
 신념이 있으면 안 되는 것을 알았다. 이것이 우리의 수준인 것이다.
 다른 보람있는 일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남기고 싶거나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도로 사는 삶을 권고하고 싶다. 인생을 경부(京釜)간 도로로 생각하자. 처음엔 2차로로, 실력과 조건이 맞으면 1차로로 진입해 달려야 한다. 차가 밀린다하여 갓길 운행의 유혹에 빠지면 안 된다. 그래서 파울을 범하면 욕심을 내지 않은 것만 못한 결과가 나온다. 유혹은 달콤하지만 그 결과는 쓰다. 그 동안 도와준 모든 분들께 감사인사를 전해달라.”
검정 코트를 걸친 그는 본관 현관 왼편의 자연석에 잠언의 한 구절 ‘하느님을 두려워 하여 섬기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를 새긴 비 앞에서 봄이 오는 남녘하늘에 잠시 눈길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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