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공도공종회
작성일 2007-01-08 (월)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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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탄생과 흥망성쇠 산역사
시조할아버지 생가터를 찾아서 (인주초등학교 교정)

                      인천 탄생과 흥망성쇠 산역사  

인천의 종가 명가

     


 역사상 인천 최초의 토착 성씨를 꼽으라면 단연 인천 이(李)씨를 첫 손에 꼽으르 수 있다. 신라말기와 고려시대에 걸쳐 인천을 중심으로 문벌을 형성하며 중앙 권력에 막강한 영향력을 펼쳤던 인천 이씨는 곧 인천의 탄생과 흥망성쇠와 궤를 같이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인천시 연수구 연수 2동 548에 중시조 허겸(許謙)의 묘와 재실인 ‘원인재(源仁齋)’ 외에는 별다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지만, 인천 이씨의 명성만은 인천의 곳곳에 자리하고 있어 화려했던 과거의 영화를 입증하고 있다.

 인천 이씨의 시조는 고려 현종의 왕비를 자신의 외손녀로 세운 이허겸(李許謙)이다. 허겸을 시작으로 고려 최고의 권력을 누렸던 이씨 문중은 이후 10대를 내려오며 11명의 왕비와 8명의 왕자, 20여명의 재상을 배출하며 고려 최고의 문벌가문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고려사에는 이씨의 시조를 신라시대까지 소급하고 있다.

 당나라 현종 당시 안녹산의 난이 발발하자 신라 경덕왕은 가야왕족 출신 6두품 허기(許奇)를 사신으로 보내 현종을 호종케했다. 결국 안녹산의 난이 평정되자 현종은 자신의 성인 이(李)씨 성을 하사하고 소성백(邵城伯)의 작위를 내리니, 이가 곧 인주 이씨의 시조인 이기(李奇)다.

 이기가 귀국하자 경덕왕은 미추홀(현 인천)이란 명칭을 소성(邵城)으로 바꾸고, 소성백을 성주로 임명해 지역을 다스리도록 했다.

 당시 왕이 하사한 식읍은 1천500호로 당시 신라의 전 인구수가 5백만명에 이르며, 당시의 불분명한 지역 경계를 감안하면 지금의 인천과 부천, 서산 이북에 이르는 광할한 지역을 다스리는 최초의 영주였던 것으로 보인다.

 경주를 중심으로 권력투쟁이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시기였던 신라말, 당시 인천은 이씨 가문이 세습권력을 누리며 지배귀족으로 확고한 위치를 구축해간다.

 이 결과, 인천 이씨는 신라말 경순왕의 손녀를 맞아들이는 등 왕족과의 통혼을 통해 권력을 더욱 공고히하며, 이같은 통혼정책은 고려개국 후 고려 왕실과도 이어져 중앙정치권에 대한 영향력을 더욱 넓혀나가는 기반을 구축해 나간다.

 인천 이씨가 역사의 전면에 부각된 것은 바로 고려시대 허겸의 등장으로부터 시작된다. 고려 현종 조에 대관의 고관이 되었으며, 그의 딸 안효국 대부인은 사공 김은부에 출가해 세 딸을 두었는데 모두 고려 8대 임금인 현종의 왕비가 되면서 조정은 허겸에게 ‘상서좌복야 상주국 소성현 개국후’를 증직했다.

 이어 8∼17대 인종 임금까지 11명의 왕비와 순종, 선종, 현종, 숙종, 인종을 포함 모두 8명의 임금이 이씨의 몸을 빌어 탄생했으며, 허겸이후 3세에서 6세까지 4대에 걸쳐 18명이 재상에 오르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인터뷰>이동호 이씨 대종회 회장

 

  

 “우리나라 성씨 600여개중 시조를 정확히 알고, 시조 묘를 모시고 있는 성씨는 그리 많지않습니다.”

 인천 이씨 대종회 이동호 회장은 인천과 가문의 뿌리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하다.

 신라말∼고려시대에 이르는 역사의 전환기에 11명의 왕비와 8명의 왕을 만들어낸 명가의 후손답게 그는 가문을 알리고 바로 세우는 데 남은 인생을 쏟아붓고 있다.

 그러나 이 회장의 속내는 안타까움이 가득하다.

 인천의 옛지명 ‘소성’이 바로 사실상 시조인 이기의 작위명에서 비롯됐으며, 이후 경원, 인주 등의 지명이 곧 인천 이씨의 명망으로 변화돼 왔음에도 인천에는 정작 인천 이씨를 기억할 수 있는 유적들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인천 이씨의 영광을 엿볼 수있는 것이 ‘원인재(源仁齋)’. 시조 허겸의 묘실로 1990년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5호로 지정됐는데 이는 이 회장이 당시 내무부장관으로 재임하며 이루어냈다.

 “소성후 시절, 인주의 넓이는 인천과 부천, 서산 이북에 이르기까지 광활했습니다. 그곳을 수대에 걸쳐 세습통치했던 문중의 역사는 곧 인천의 역사였죠.”

 인천 이씨로 인해 역사에 첫 선을 보인 인천은 곧 이씨의 가문사와도 동일한 길을 걸었다.

 “고려시대 이씨 문중은 무신들의 견제에 밀려 권력의 중심에서 철저히 배제, 몰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후손들은 살기위해 본을 숨기고, 개명하며 그늘로 숨어들었다고 한다. 그 결과 현재 종친회원이 전국적으로 10만명에 불과할 정도로 이씨는 후손이 적은 성씨가 됐다.

 “최근 본을 바꾼 이씨 족보를 연구, 인천 이씨에서 갈라진 성씨들을 찾고 있습니다. 이순신의 가문인 덕수 이씨, 흥양 이씨, 양산 이씨, 함안 이씨 등이 모두 인천 이씨에서 갈라져 나간 성입니다.” 이 회장은 요즘 뿌리찾기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이들 갈라져나간 이씨들이 모두 인천 이씨의 그늘아래 모이는 것, 그것이 바로 이회장의 삶의 목표다.

 

인천일보 7월 15일 16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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