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공도공종회
작성일 2007-01-08 (월)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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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고등 사기다" (34世) 이우환
"예술은 고등사기다"

 

반백의 머리에 작은 체구, 평범한 옷차림을 보고 그가 백남준과 더불어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미술인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일본 모노파(物波) 운동의 선구자인 이우환. 마침 국립현대미술관이 70, 80년대 한국의 모노크롬(단색화) 회화전(내년 2월 2일까지)을 열면서 그의 작품들도 새롭게 관심을 모으로 있다.  최근엔 '여백의 예술'(현대문학) '시간의여울'(디자인하우스)등 수필집도 잇따라 펴낸 그를 만났다.

  -아라키와는 언제부터 알았나.

  "서로 무명시절인 60년대 말부터이다.  서울로 같이 사진 찍으러 다니고 내가 사진을 골라 주기도 했다.  본래 말수가 적고 수줍음을 많이 타던 친구였는데 많이 변했다.  자기 세계가 생겨서 그런지 좀 망나니가 되었다(웃음).  그는 단순히 누두작가가 아니다.  어느 앵글로 찍어도 다 작품이 된다.  사진을 본격적으로 찍게 된 동기가 아내 때문이었다.  유명해져야 겠다, 이런 욕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작품이 순수하다."

  -수필집 곳곳에 국외자(局外者)의 외로움이 베어 있다.

  "누구나 그렇듯 젊었을 땐 나도 달아나고 싶었다.  모든게 시시했다.  어릴 때 할아버지 친구에게서 한문과 그림을 배웠는데 그 인연으로 서울대 미대에 들어갔다.  3개월 만에 때려치우고 여름방학 때 일본에 있는 삼촌한테 놀러 갔다가 그대로 눌러않았다.  한국인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닌 채 그렇게 40여년이 흘렀다."

  -모든게 시시했다는 것은 '오만'했다는 뜻 아닌가.

  "맞다.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철이 들었다.  내 오만이 안 통하니까(웃음). 일본에선

한국을 찿은 일본의 사진작가

아라키 노부요시(62)의 기자회견이

있었던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민미술관1층.

열정적으로 말을 이어가던 아라키의

시선이 문득 한 남자에게 멈췄다.

그가 아라키에게 다가왔고 두 사람은

30여명의 보도진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뜨겁게 포옹했다.

이 남자는 다름 아닌 재일(在日)화가

이우환(66. 다마대 교수)

 

●그림을 왜 그립니까

 "사람들을 무덤덤한 일상에서 깨어있게 만들고 싶어서지"

●그림잘 그리려면-

 "만권의 책 읽고 만감을 갖고 만리 길 걸은뒤 붓 잡아야지"

전공을 바꿔 철학과(니혼대)엘 갔는데 완전히 기가 질렸다.  책깨나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말도 달리고, 학비 버느라 그림에 손을 댔는데 그 바람에 환쟁이가 됐다."

  -그림을 잘 그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1만권의 책을 읽고, 만감을 갖고(사색), 만리길(경험)을 간 다음 붓을 들어야 한다.

과학이나 문학이나 여타 모든 학문처럼 미술도 많은 사색과 경험을 통해 나오는 거다.  그래야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알고 그것을 캔버스에 뱉어내는 거다.  아무것도 보여줄 게 없는데 뭘 그려.  그건 사기다 사기."

  -어차피 모든게 사기 아닌가.

 "예술은 고등사기다.  '고등'이란 말은 사기를 잘 쳐야 한다는 거다.  아주 지혜롭게 깊게 말이다.  결국 그건 사기가 아니다."

    -그림을 통해 사람들에게 뭘 보여주고 싶은가.

  "헷갈리게 하고 싶다.  내 그림을 보면서 도대체 이건 뭔가? 묻게 하는 거다.

 -묻게 해선?

"일상에서 깨어 있게 만드는 것이다.  그게 지식인이고 문화인이다.  대중에 맞장구치면 안된다.  그건 범죄다.  삶의 위화감, 부조화, 불균형을 드러내 일상을 고이고 썩지 않게 해야 한다."

  본래 문학도를 꿈꾸었다는 그의 화법은 다분히 철학적이고 시적(詩的)이었다.  그리고 겸손했다.  한국에 나오면 번거러운 일이 많이 생겨 매번 도망치듯 떠난다는 그는 마지막으로 '관계'라는 화두를 던졌다.

 "결국 산다는 것은 관계의 문제다.  숱한 외세의 침입도 그 관계 속에서 우리가 튼튼해졌다고 생각해야 한다.  지정학적으로 우리는 반도니까 흘러가는 곳이다.  하지만 일본은 섬이라 받아들여 고이는 곳이다.  그래서 인공이 발달한 거다.  몽골 중국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부정하면 안 된다.  못난 사람들 짓이다."

 

허문영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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