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운영인
작성일 2011-07-19 (화)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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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도 대학신입생 뿌리교육 소감문(2)

곳에 오기 전, 뿌리교육 신청서를 작성할 때 인천이씨를 모르는 사람이 많아 우리 가문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던 것도 하나의 동기였지만, 그 보다는 장학금이라는 것이 교육을 받기 전 나에게는 더 큰 동기였다.도착하자마자, 여러 강의를 들으면서 지쳤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우리 가문에 대해서 알아간다는 것이 신기하고 자랑스러웠다. 누구보다 큰 뿌듯함을 느꼈던 것은 나였을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어디 이 씨에요? 하고 물어보면 주춤거리며 대답을 하는 것이 습관이 들 정도로 우리 가문에 대한 자신이 없었다. 인천이씨라고 말할 때면 항상 사람들의 표정은 어리둥절했고 ‘그런 이 씨가 어디 있냐? 잘못 안 것일 것이다. 다시 부모님께 물어보아라.’가 매번 돌아오는 대답이었다. 그로인해 나는 내 성에 대해 질문 받는 것을 싫어했고, 우리 가문에 대해 의구심을 가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 가문인 인천이씨는 고려시대 명문벌족으로 한 시대를 영위해 온 많은 인물들에 대한 강의를 들으면서 우리 가문에 대해 자랑스러움을 느꼈고, 사람들이 모르는 인천이씨가 잘못된 것이 아니고 인천이씨를 모르는 사람들의 무지함이 잘못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했었던 어색한 분위기도 조금씩 사라지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께서 한 핏줄이기 때문에 어색함은 빨리 없어질 것이라고 했던 말씀이 진짜인 걸까? 진짜 그러한 이유라면 한 핏줄이라는 것이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이번 교육에서 우리 가문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절하는 법에 대해서도 배우고, 여러 예절을 배워 예절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또, 대학생활에 대한 강의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공부, 내가 하고 싶은 것, 앞으로의 내 미래에 대해 진지한 생각을 가져보고, 마음속으로라도 대강의 계획을 다시 잡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된 것 같아 보람찼다.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은 오천 이문화 평전 강의 시간이었다. 저자 선생님의 열정도 큰 이유지만 오천 이문화 선생님과 우리 가문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강의 중 말씀 중에서 허 씨가 인천이씨와 관련이 있는 것은 맞지만 허 씨인 내가 오천 이문화선생에 대해 이렇게 공부하고 있다. 인천이씨인 학생들은 더더욱 오천 이문화 선생에 대해 알아가고 공부해야 한다. 라고 말씀 하셨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번 뿌리교육을 통해 자부심을 가지게 되고, 많은 것을 알게 된 만큼 저자 선생님의 말씀대로 잠시의 관심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 가문과 오천 이문화 선생님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으로 알아가는 자세를 가져야겠다. 여기 오기 전 가장 큰 동기였던 장학금만큼이나 값진 사실들과 말씀을 들을 수 있어 기뻤다. 0민

19기 대학신입생 뿌리교육을 오게 되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대구역에 도착을 했다. 그런데 기차를 놓쳤다. 타려고 하는데 기차 문이 닫혔다. 역장 아저씨를 애타게 불러보았지만 아저씨는 호루라기만 불었다. 결국 돈을 더 내고 다른 기차를 탔다. 그래도 11시 전에 도착을 했다.교육관의 건물은 새 건물처럼 깨끗하고 시설이 잘 돼 있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대학교 MT에 한 번 더 온 느낌이었다. 첫날 일정에 직접 고유제를 체험하는 일정이 있었다. 모두 밖으로 나와 오천제에 모여서 몇몇 애들이 옷차림도 제대로 갖춰 입고 고유제를 지냈다. 고유제는 매우 격식을 차리고 아주 우아하고 조상님들을 위한 행사인 것 같다. 조상님들이 보시면 매우 흐뭇해하실 것 같다.  둘째 날에는 나의 뿌리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나의 시조가 누구이고, 어떤 업적을 남기셨는지에 대한 것들을 상세히 알 수 있었다. 우리의 조상님들은 매우 훌륭하신 일들을 하신 것이 매우 자랑스럽고 자동으로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것 같다. 마지막 수업으로 민요 부르기를 하였다. 아리랑을 이렇게 다 함께 부르니 흥이 나 어깨가 들썩거렸다. 그리고 우리의 민요 아리랑이 나무라는 뜻인 것도 알았고 민요에 대가이신 이재욱 선생님도 알게 되었다. 0동
2박3일 동안 이곳에서 배운 모든 것들이 앞으로의 제 생활에 많은 영향을 줄 것 같습니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인천이씨에 대한 어떤 지식도 없었고, 그 만큼 인천이씨에 대한 자부심도 없었습니다. 이곳에 와서 뿌리교육을 받으면서 인천이씨란 가문이 특별하고 소중한 것 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나의 뿌리에 대한 관심이 많이 부족하고 지식도 없었는데 이곳에 와서 지식도 쌓아가고 관심도도 많이 올라갔습니다. 앞으로도 관심도를 더 높이고 지식을 더 쌓을 수 있게 하겠습니다. 이곳의 뿌리교육이 더 좋았던 점은 뿌리에 대한 공부뿐만 아니라 생활 속세서의 예절들과 알찬 대학 생활을 할 수 있게 강의를 해 주신 것 입니다. 어느 때보다 알찬 2박3일을 보낸 것 같습니다. 이런 교육의 기회를 주신 인천이씨공도공파종회와 이곳에서 만난 여러 어르신들께 감사드립니다. 좋은 가르침이 헛되지 않게 돌아가서도 노력하겠습니다. 지0
육 내내 비가 와서 아쉽긴 했으나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강의도 좋았으나 잠이 많아 제대로 잘 못들을 것도 아쉬웠습니다. 뿌리교육을 총해 제 뿌리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어 좋았습니다. 제 친척들밖에 몰랐던 ‘인천이씨’ 친구들을 만나게 되어 인맥을 넓힌 좋은 경험이었습니다.비가 와 첫날 고유제랑 산신제를 가까이서 보지 못하고 참여하지 못했지만 음복을 했으니 2학기, 방학동안 열심히 공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년에 동생도 올 것인데 적극 추천해야겠습니다. 방학동안 생활 패턴이 엉망이었는데 규칙적인 생활 덕분에 집에 가서도 전보다는 나은 생활을 할 것 같습니다. 대구 친구들이 주였으나 다른 지역 친구 등, 그리고 다른 환경에서 자란 친구들을 만나 뜻 깊은 시간도 되었습니다. 첫 날에는 벌레 때문에 고생도 하긴 했으나 한 방에 모두 모여자니 또 다른 경험이 되었습니다. 둘째 날 방에는 친구들과 이야기 하는 시간도 늘어서 밤이 조금 더 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밥이나 간식도 정말 맛있었습니다. 특히 찐빵! 최고였어요. 2박 3일 동안 진짜 좋은 경험을 잔득하고 갑니다. 내년에 동생도 좋은 경험했으면 좋겠습니다.   0정
당히 유익하고 좋은 시간이었다. 친구들도 좋고 잠자리도 나쁘지 않았다. 주방장님이 정성스럽게 만들어 주신 밥도 매우 맛있었다. 여기에 오기 전, 솔직히 뿌리에 대한 지식도, 관심도 전혀 없었다. 그러나 지금 공도공 이문화 할아버지를 비롯한 많은 훌륭한 인천이씨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부터 나는 뿌리에 많은 관심과 애정을 쏟을 것이며, 이후 나의 자손들에게도 이 좋은 성씨를 물려주고 싶다. 대0
모님이 우리 집안 종친회에서 뿌리교육을 시키고 장학금을 주는 교육이 있다고 했다. 처음에 이런 것도 있는 게 너무 신기했다. 친구들에게 얘기하니 자기들 집안에서는 그런 교육이 없다고 신기해하면서 부러워했다. 우리 과 교수님께서도 방학 때 뿌리교육을 간다고 말씀드리니 좋은 기회라고 많이 듣고 배워오라고 말해주셨다. 그래서 새삼 더 기대되었다. 우리 동네에 사는 같은 학교를 나온 친구들 중에는 인천이씨가 많았다. 그래서 같이 오게 되었다. 아는 친구들과 가게 돼서 더 즐거울 것 같았다. 기차를 타고 천안역에 도착해서 오천 교육관을 찾아오는데 생각보다 찾아오기 어려웠다. 택시기사 아저씨께서도 잘 모르셨다. 그래서 찾아 오는 게 조금 불편했다. 하지만 교육관 시설은 생각보다 훨씬 깨끗하고 좋았다. 그리고 개강하고 여러 강의를 듣게 되었다. 오천재에서 고유제에 대한 강의를 들었는데 고유제때 입는 의복도 처음 보게 되었고 고유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알게 되었다. 모든 게 새롭고 신기했다. 의복을 입어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그래도 의복에 대한 명칭이나 고유제 때 언제 절을 어떻게 하는지, 집사나 집례 등의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등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후, 교육관 안에서 예절지도를 받았다. 때와 여러 경우에 따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새삼 예절에 중요성에 대해 깨닫게 된 뜻 깊은 강의였다. 그리고 대학생활에 대해 강의도 해주셨다. 듣고 많은 것을 느꼈고 어떻게 대학생활을 보내야 할지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또 우리 인천이씨의 뿌리에 대한 강의도 있었다. 솔직히 정말 아는 게 별로 없었는데 많은 것을 알고 가게 되서 기분이 좋다. 마지막 강의였던 우리나라의 전래민요에 대한 강의는 제일 재미있었다.직접 아리랑도 불러보고 아리랑에 대해 알게 된 시간이었다. 2박3일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여러 강의를 들으며 불편하기도 하지만 뜻 깊고 좋은 시간을 보내고 가게 돼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0혜
6월 23일 오천교육관에 왔다. 나는 22일 날 충북 영동에서 기숙사를 퇴관하고(21일이 방학 이였고, 짐은 택배로 붙였다) 집에 갔다가 이곳 천안에 오려고 했지만 집에 가는데 5~6시간이 걸려서 아버지께서 바로 천안에 갔다가 집에 올라오는 것이 편하지 않겠느냐 싶어서 교육 시작 하루 전에 천안에 와서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23일 택시를 타고 11시경에 도착했다. 첫 느낌은 경치가 좋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맨 처음 교육을 받은 것은 공수와 절하는 방법에 대해 배웠는데, 네가 알고 있는 부분도 있었고, 몰랐던 사실도 많았다. 그리고 인천이씨공도공파의 시조이신 공도공 할아버지와 경주최씨 할머니에게 제사를 올렸다. 나는 제관 중에 축이라는 것을 맡아서 축문을 읽었는데, 처음해보는 것이라 매우 어색했지만 한문 옆에 한글로 주석이 달려 있어서 읽는데 에는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았다. 제사를 마치고 인천이씨의 역사에 대해서 배우는데 우리가 김수로왕의 후손임을 알았고, 부모님께 공도공 할아버지가 위대하신 분이라는 것을 말씀해 주셨지만 여기 와서 기존에 알고 있었던 것보다 더 업적이라던가. 권세가 높았음을 느꼈다. 그리고 24일 아침에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는데 북한과 우리나라의 정세에 대해 다시 알아보는 좋은 기회였다. 그러고 나서 오천 이문화평전의 저자 허 교수님께서 직접 오셔서 공도공 할아버지에 대해서 정말 자세히 설명해 주셨는데, 정말 재미있었고 유익한 시간인 것 같았다. 그리고 25일 아침 공도공 할아버지와 경주 최 씨 할머니 산소에 가서 인사를 하고 허 교수님이 설명을 해주셨다. 여기 와서 느낀 것이지만 우리 인천이씨는 정말 위대한 일족인 것 같다. 여기 계시는 어른들도 하나같이 다 뛰어나신 분들 같았다. 다음에 내 동생들에게도 꼭 뿌리교육에 오게 할 것이며, 몇 년 뒤 결혼을 하고 내가 자식이 생겨도 반드시 뿌리교육에 참가하여 인천이씨에 대해서 확실히 알게 할 것이다. 0진
음 인천이씨 뿌리교육 캠프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인천이씨에 대해 관심도 없었고, 나의 조상이 누군지 어떤 일을 하셨는지도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캠프에 오는 길에 계속 투덜투덜 거렸다. 하지만 이곳 오천교육관에 도착하자 많은 인천이씨를 만나게 됐는데 처음 만났지만 거리감도 없었고 친근하게만 느껴졌다. 이런 캠프가 없었더라면 이 많은 인천이씨들을 만날 수 없었을 거란 생각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강의를 들으면 들을수록 나의 뿌리에 대해 점점 알아갔고, 내가 인천이씨 가문이라는 것에 대해 이젠 자부심도 생겼다. 교육을 받으면서 알게 되었는데 조선 건국 기틀을 세운 역사 인물이자 우리의 조상인 이문화 선생님의 한시나 유적지가 우리나라 곳곳에 있었다. 얘기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박물관에 실제 보관되어 있고 여러 지역에 남아 있는 이문화 선생님의 흔적을 보니깐 우리의 뿌리가 정말 대단하게 느껴지고 가슴에 더 와 닿았다. 그리고 강사 선생님들의 유익한 강의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1시간 수업 10분 쉬는 시간 이렇게 수업했으면 더 집중하고 잘 들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강의시간이 길어지면 집중력이 너무 떨어지기 때문에 꼭 한 시간 수업하고 쉬는 시간 쉬고 또 한 시간 수업하는 방식으로 하면 좋겠다. 그리고 또 안타까웠던 것은 너무 앉아서 책으로 공부하는 점이다. 걷든, 차를 타던지 유적 물을 직접 봤으면 더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고, 친구들끼리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 밥 먹고 자는 시간 외에는 얘기를 할 시간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오천교육관에 와서 뿌리교육을 받으므로 나의 뿌리에 대해 많이 알게 돼서 정말 뿌듯하고 좋다. 내년에 꼭 동생에게 가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뿌리에 관련한 수업 말고도 여러 가지 좋은 강의들도 들을 수 있고 많은 인천이씨들을 볼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꼭 가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0비
는 이번 2011년도에 대학교에 입학하고 제 19회 뿌리교육을 받은 이윤지입니다. 저는 2박3일 동안 교육을 받으면서 많은 것들을 듣고, 배우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고2부터 이과의 길을 선택하여 이후로 듣지 않았던 역사 수업을 듣느라 힘들기도 하였지만 유익한 경험이 된 것 같습니다. 사실 뿌리교육이라는 단어만 듣고서는 이것이 무엇을 교육시키려는 의도인지 알기가 힘들었지만 이제는 잘 압니다! 먼저 첫째 날에는 예절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에서부터 절을 하는 방법, 공수법 등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하는 행동들이지만 우리가 잘 모르는 예의범절을 정확히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 비가 왔지만 조상님들께 고유제도 지내었습니다. 또한 처음 보는 먼 친척관계인 친구들도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같이 강의도 듣고 밥도 먹고 잠자리에 함께 들며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친목을 다질 수 있었습니다. 이번 교육을 받으며 저에게 자랑스러웠던 점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불규칙적인 습관을 깨버리며 생활하였다는 점입니다. 둘째 날에는 강의만이 풀로 가득 찬 스케줄이었는데, 인천이씨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달려온 흔적과 역사를 배워나가는 시간도 있었던 반면, 대학 신입생에게 알맞은 강의도 해주셔서 좋은 얘기도 많이 듣고 나의 대학생활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며 다음 학기에는 목표를 가지고서 부모님께 감사하며 학교에 다녀야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밥도 맛있게 나오고 시원한 이곳에서 쾌적하게 생활을 하며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도와주신 인천이씨공도공파종회 분들과 뿌리교육의 존재를 알려주시고 절차를 밟아주신 할아버지, 아버지께 감사의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0지
소 천안에 올 일이 없어 이번에 처음으로 왔는데 천안에서 10년 넘게 개인택시를 하셨던 분이 오천교육관을 모른다는 말을 듣고 걱정이 앞섰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오천교육관은 걱정과 달리 생각보다 시설이 괜찮았다. 하지만 이것은 속임수!!  예절지도 강의를 들을 때 처음에는 ‘저런 게 있구나. 하는 참신함을 느끼다가 점점 복잡해짐에 따라 지루해지고 결국 3시간동안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사경을 헤맸다. 건진 것 중 실생활에서 많이 쓸 만한 것은 흉사와 길사에 손을 달리해야 한다는 것 정도였다. 이러다 결국 잘 시간이 됐는데... 이불수와 베개수가 사람에 비해 적었다. 게다가 말해도 아무런 조치도 안 해주고... 결국 아무것도 없이 에어컨을 킨 상태에서 맨바닥에서 자는 사람도 있었다. 이렇게 실망감을 안고 첫날이 끝났다.  둘째 날은 실생활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지 첫날에 비해 집중이 잘 됐다.  “빅뱅과 대학생활은 같다.” 같은 이야기와 등록금이 현재 이슈라는 이야기는 마음에 와 닿았다. 하지만 이 역시 내용과 방식이 약간 아쉬운 것이 있었다. 첫 번째는 “북한은 아사하는 사람이 많으므로 나라가 아니가.” 라는 발언이었는데 개인의 사적인 감정으로 한나라의 일부분이 아닌 나라 자체를 부정한다는 것이 좀 거슬렸다. 그렇다면 아프리카의 못사는 사람들과 서아시아의 빈민가, 쌀 최대 수입 국가이지만 요즘엔 수요량을 못 채우는 필리핀 같은 곳도 나라가 아닌가. 나라에 대한 발언을 너무 경솔하게 하신 것 같다.  두 번째는 오천 이문화 평전을 수업하신 허철회 교수님께서도 아쉬운 게 있었다. 수업 중 대부분이 주제를 벗어나 그냥 역사 수업을 하신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는 마음에 와 닿았지만 반감을 들게도 한 등록금 얘기다. 이 얘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우선은 “미국이 비싸긴 하지만 그 시설이라면 열배도 낼 수 있다!” 인데 미국 대학생의 대부분은 국립학교로 입학해 대부분의 학비를 지원 받는다. 그리고 일부 미국 대학생만이 비싼 사립대를 가는데 이들은 장학금을 받는 학생이나 부유한 가정의 자식들이다. 그에 비해 한국 대학생들은 일부만이 국립을 가고 대부분이 사립에 입학한다. 게다가 학비 지원도 굉장히 작다. 이걸로도 모라라서 한국인의 대학 진학률은 미국인의 대학 진학률 보다 크다. 비교할 바가 못 된다. 그 다음으로 “공부는 하고 등록금이 비싸다고 생각하는가. 부모에게 등록금을 달라고 하는 게 부끄럽지 않은가?” 라는 발언이었는데 이때 정말 울컥했다. 그 이유는 돈이 없어서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공부할 기회는 주기나 하고 물어보는 것인가? 물론 나에게는 공부 할 기외가 주어지긴 했지만 묻지도 않고 그냥 1학기를 버렸다고 치부하는 것이 불쾌했다. 그리고 같은 학교 선배들과 친구들은 공부를 잘해도 장학금을 받지 못해 휴학하거나 전약 장학금을 받으면서도 비싸다고 시위에 참여하는데 이런걸 보고도 내가 등록금을 비싸다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된 것인가, 이런 것들 때문에 강의를 들으며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소감은 이정도 인 것 같다. 0엽
말 오기 싫은 프로그램이었다. 왜냐면 아르바이트도 시작했어야 했었고 목금토를 옴으로써 방학 후 일주일의 계획을 실행 못하게 되어서 화도 났다. 드디어 목요일이 되었고 천안에 11시까지 도착하기 위해 5시에 일어나 광주터미널에서 7시 차를 타게 되었다. 너무 피곤하고 가기 싫었지만 나 혼자 버스를 타고 여행길에 오른 건 처음이여서 살짝 들뜨기 시작했다. 버스를 혼자 타고 음악을 들으며 창밖을 보고 오는데 나쁘진 않았다. 그래서 2시간 30분을 달려 도착한 천안버스터미널! 광주랑 다른 시내버스 시스템에 많이 당황스러웠다. 기사님께 물어물어 500번 버스를 타게 되었다. 신성아파트 단지가 아니라고 도착하면 알려주신다던 기사님은 두정거장이나 지나서 내려주셨다. 그때부터 내리던 장맛비에 좀 화가 나기 시작했다. 찾아오라고 그려주신 지도에 자세히 오는 길이 나타나지 않아서 걸어가려 엄두를 못 내고 결국 택시를 잡았다. 택시 기사아저씨는 길을 몰라 많이 헤매셨다. 우여곡절 끝 도착한 오천재교육관! 친절한 여선생님이 지도해주셨다. 락카에 짐을 넣고 준비된 T셔츠로 갈아입고 모였다. 시설은 깨끗하고 좋았지만 화장실과 씻는 곳이 다른 건물인 점이 너무 너무 불편했다. 그리고 벌레가.. ㅠ.ㅠ 너무 많았다. 그 불빛으로 유인해서 다 터지게 하는 걸 좀 설치해주시면 좋겠다. 첫째 날 저녁 여선생님이 너무너무 수고하셨다. 벌레로 인해.. 아무튼 그렇게 모인 70여명의 대학교 새내기 들은 각자 소개를 짧게 하고 어색하게 앉아 있다가 산신제와 고유제 체험을 하러 밖으로 나갔다. 나는 어떻게 뽑힌 건지는 모르겠지만 집사에 뽑혀서 고유제(?) 참여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 역할도 못 맡은 친구들은 비가 오므로 인해 더 참가하지 못해서 그냥 서 있기만 하고.. 내가 만약 안 뽑혀서 그렇게 서있었다면 짜증났을 것 같았다. 아무튼 나는 고유제 참여를 해서 멋진 경험이었고 옷 입은 것도 신기했다. 3일 동안 아침 점심 저녁을 해주신 두 요리사(?) 분들에게 너무너무 감사했다. 밥 정말 맛있었고 친절하시고 매 타임 준비해주신 찐빵과 음료수 정말 잘 먹었다. 조금 아쉬운 건 식당이 작았던 거... 그리고 친구들이랑 모두 친해지지 못한 점이다. 그냥 앉아서 수업 듣는 프로그램 뿐이었고 정작 모인 친구들 하고는 친해지지 못하였다. 왜 서로 얘기안하냐’라기 보다는 모인 19기 친구들과 함께 친해질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정말 좋았을 것이다. 솔직히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같은 조에서 한 번도 말 안 해본 애들이 있을 정도이다. ‘도대체 조는 왜 나눠진 건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 날 하루 종일 꽉꽉 짜인 수업보다 한 타임은 친해질 수 있는 아니면 첫째 날 그런 시간이 있었다면 수업도 더 화기애애해지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우리가 물론 교육받기 위해 모인거지만 너무 형식적이었고 솔직히 좀 지루했다. 우리 위대하신 인천이씨의 얘기를 듣는 것도 좋았고 나의 뿌리, 나의 世를 알아서 신기했다. 정말 20살 여름의 좋은 추억이었고 이 프로그램을 위해 열심히 강연해주신 모든 분들과 우리 잠자리 마련해주시고 애쓰신 선생님들, 밥 맛있게 먹었어요! 요리사님들 감사하다! 연0
선 나는 이번 ‘인천이씨공도공파종회’에 너무나도 큰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사실 오래전부터 우리 ‘인천이씨’에 대해서 알고 싶었지만 알 길이 없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알기 위해 노력을 안했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일 수 있다. 아버지와 할머니께 물어 보아도 나의 궁금증을 해소하기엔 턱없이 모자랐다. 그런데 이번에 아버지를 통해서 여름방학을 통해 대학신입생을 위주로 한 제19기 뿌리교육을 한다는 소식을 통해 들었고 망설임 없이 나는 이 교육에 참여의사를 아버지께 보였다. 평소 어디에 잘 참여하는 성격이 아닌 나라는 걸 알던 아버지였기에 다소 놀랐듯 하였다. 지금까지가 내가 이곳에 오게 된 전반적인 내용이었다. 나는 이번 교육캠프를 통해 너무나도 얻은 것도 많고 놀란 점도 적지 않다. 우선 우리 ‘인천이씨’가문이 특별할 정도로 사람 수가 적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나는 이런 캠프를 열었다는 것에 놀랐고, 이러한 캠프를 열 정도의 재단과 재정이 있었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무엇보다 가장 큰 감명과 놀라움을 나에게 준 것은 우리 ‘인천이씨’ 가문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 교육캠프를 하기 전엔 인천이씨공도공종회가 있는지도 몰랐던 나였기에 ‘대학생 뿌리교육’이 이번이 19회 째가 될 정도로 오랫동안 유지를 해왔고 이 재단이 만들어져 운영되어 온 것은 심지어 40년이 넘었다는 것에 큰 놀라움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서 많은 강의를 들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강의의 내용들이 덩어리로만 기억이 날 뿐 자세한 부분까지 섬세히 기억은 나지가 않는다. 잠도 자지 않았다고 하면 그것 또한 거짓말일 것이다. 중간 중간에 몰래몰래 한 번씩 졸기도 했고 밖에서 시간을 약간 보내고 오기도 했다. 하지만 교수님들이 강의를 할 때만큼은 나도 열심히 듣기 위해 노력했기에 뿌듯함도 느꼈다. 나의 할아버지 정도의 연세를 지니신 분들의 말씀을 과연 어디에 가서 어른들의 말씀을 듣고 이런 교육을 받아볼 수 있을지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내 또래 친구들이지만 어떻게 보면 친척이기도 한 70명가량의 친구들도 너무 좋았다. 성격들도 다들 좋고 재밌고 무엇보다 친척(?)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뭔가 확실히 다른 새로운 사람들을 대할 때 보다 더 편안한 느낌도 받았고 더 쉽고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다. 비록 아주 멀 수도 있는 친척이라도 조상님은 같았기에 정도 더 쉽게 갔다. 맛있는 식단들과 공기 좋고 경치 좋은 이곳에서 마치 휴가를 즐기다 간 듯하다 이번 교육캠프를 나는 쉽게 못 잊을 것 같다. 나에게 4살 어린 남동생이 있는데 이 교육캠프가 그때까지 유지가 되어 내 동생 또한 나처럼 이 교육을 받고 우리 가문을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만약 그때가 된다면 먼저 교육을 받은 선배로써 조언을 해 주고 싶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이 모임과 행사가 오랫동안 유지를 하며 나를 제외한 여러 친구들도 많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기 바란다. “바라는 점”-미래친구들을 위해 1. 셔틀버스의 운행. 2. 화장실(남) 창문이 너무 개방돼 쑥스러움. 3. 여자 방의 에어컨 설치. 4. 벌레가 많기에 벌레망 설치. 5. 친구들과 조금 더 친해질 수 있는 새로운 프로그램 도입. 6. 비가 많이 오는 장마철을 피한 날짜 선정. 7. 빡빡한 강의 일정을 좀 더 느슨하게 조정. 8. 찐빵을 제외한 좀 더 다양한 먹을거리. 예)매점 설치. 9. 더 많은 이불과 베개 비치. 0원
가 인천이씨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새삼 다시 느끼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아버지가 말씀해 주시는 것보다 친척들이 가르쳐 주시는 것 보다 더 깊고 자세한 이야기들도 들을 수 있었다
역사 속에 나오는 인물들이 나의 선조이고 같은 뿌리라 하니 신기했다. 역사속의 인천이씨 여성과 남성 모두 참 훌륭한 일을 하셨는데 이를 본받아 나도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해보는 계기도 되었다.히 인천이씨의 여성들에게서 놀랐다. 왕의 부인이자 또 왕의 어머니이기도 하신 분들이셨다니!  또 역대 왕들이 우리 인천이씨 집안의 핏줄이라는 것은 생각도 못했던 일이다. 책을 보고 강의를 들으면서 오랜만에 다시 역사공부를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역사 속에 우리 조상이신 이문화 선생님이 계셨다. 이곳에 오기 전에 집에서 책을 읽으면서 밑줄 쳐 둔 구절이 있다. “정치를 잘하기 위해서는 지나간 치란의 자취를 살펴보아야 한다. 지나간 치란의 자취를 살피기 위해서는 역사를 상고하는 것이 최선이다.” 라는 세종대왕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저자 허철회 교수님께서도 그런 말씀을 하셨다.  내가 비록 정치를 할 것은 아니지만 지나간 역사를 보며 공감하고 반성하는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나에게도 중요한 일인 것 같다. 역사는 나보다 훌륭하시고 먼저 사셨던 분들의 행동 기록이다. 아직 경험이 많지 않은 나에게 교훈을 주고 적절한 대처방안을 강구하도록 해주는 아주 좋은 공부재료이기도 하다. 교육기간동안 강연해주신 유수의 교수님들 여기까지 시간을 내서 오시기 힘드셨을 텐데 우리들 교육을 위해 와 주셔서 감사하다. 인생의 선배로서 우리들에게 해주신 말들 후손들에게 앞으로 훌륭한 미래를 열어가라고 나누어주신 경험과 교훈들 잊지 않고 생각하면서 어른이 되는 훈련을 해야겠다. 강의해주시면서 이재도 교수님께서 “자주적인 힘을 길러라. 그리고 내 평생의 꿈과 이상을 정해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자신은 이 나이에도 꿈이 많다고 하셨다. 멋져보였다. 대학생이 되어 점차 꿈이 줄어드는 요즘 이 말씀에 반성하고 공감중이다. 지금부터라도 꿈을 정하고 이를 위해 행동하고 그래야겠다. 이곳에서 직접 제복을 입어 아헌관도 되어보고 산신제, 고유제도 지내보고, 예절에 대해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과연 또 어느 가문이 이렇게 서로 모여 제사도 해보고 공수나 읍례에 대해 알려주고 배우는 가문이 있을까? 인천이씨라는 것이 자랑스러운 순간이었다. 조금 아쉬웠던 점은 사람들과 잘 친해지지 못한 점이다. 다음 뿌리교육에는 조별 활동 같은 것들을 코너에 넣어서 사람들과 좀 더 잘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고유제에 참여하면서 헌례를 할 때 공도공 이문화 할아버지와 정경부인 할머니의 영정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진짜로 이문화 할아버지와 정경부인 할머니께서 지켜보시는 듯 하다 느낌?!  앞으로 조상님들께 부끄러운 모습 보여주지 않기 위해 잘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리고 이제는 이문화 선생님에 대해서도 알게 된 이상 이문화 선생님의 유적지나 다른 이천이씨와 관련된 다른 것들도 그냥 지나치지 못할 것이다. 이게 다 어른들께서 마련해주신 이 자리 덕분이다.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 전하고 싶다. 모르던 것을 알게 해주시고, 잘못 알던 것을 바로 잡아주셔 탄탄한 뿌리의식 가지게 도와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 오늘을 기억하면서 바른 뿌리의식을 지니며 살아가는 내가 되어야겠다. 0영
음 인천이씨 대학생 뿌리교육을 실시하니 가보라며 아버지께서 말씀 하셨을 때 모든 학생들이 그렇듯이 가보고 싶지 않았다. 처음 보는 친구들과 불편할 것 같았고 방학 중에 괜히 시간 낭비하는 것 같아서였다. 여기 오천재에는 올해 1월 방학 중에 와 본적이 있었다. 천안에 겨울 휴가로 가족끼리 리조트를 갔었는데 갔다가 이곳을 들렸었다. 오천재를 처음 들어갔을 때 별반 다른 것 없는 옛날 집을 보고 그냥 그러려니 했었다. 할아버지의 설명을 듣고 대충 깨달았었고 거기서 사진 한 장 찍고 나와서 집으로 돌아가면서 먹었던 호두과자 밖에 기억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 와서 처음 예의에 관한 동영상을 보고 여러 좋으신 교수님들의 설교와 특히 이용하 지회장님이 해주신 고유제, 예절지도 시간에 오천재에 들렸을 때 가족들과 올해 초에 찍었던 사진이 떠오르면서 이곳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고 내가 인천이씨의 33世손이라는 것과 이 가문의 사람이고 여기 온 모든 친구들의 같은 뿌리이구나. 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역사 공부를 싫어하는 나인데 2박3일 동안 무슨 이유에서 인진 잘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배운 것 같다. 세계사를 알기 전에 한국역사를 알아야 하고 그 전에는 가문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분명한 사실도 여기 오면서 알 수 있었다. 어떤 가문에서도 이렇게 후손들을 위해 뿌리교육을 실시하고 질문의 시간을 갖고 이를 통해 인천이씨 가문이라는 것의 자부심을 주게 할 순 없을 것이다. 많은 캠프를 다녀봤지만 배움을 통해서 보람과 뿌듯함을 느낀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이 많은 배움을 항상 생각하고 가슴속에 세기며 인천이씨의 자손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이 훌륭한 가문을 빛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윤0
실 나는 뿌리교육을 통해서 어떤 것을 얻게 될 것인지 아무 생각 없이 천안행 버스를 탔던 것 같다. 막연하게 인천이씨. 조상에 대해서 배울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 어떤 것을 느끼고 어떤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그런데 막상 이곳에 와서 지내고 나니 얻게 된 것은 두 가지인 것 같다. 첫 번째는 흐릿하게만 알고 있었던 나의 뿌리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천이씨가 이렇게 여러 지역에 나뉘어 살고 있다는 것도, 그 시조가 허 씨라는 것도 부끄럽지만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만약 지금 고유제와 산신제를 다시 지낸다면 아무것도 모른 채로 지냈던 첫날의 제사 때 느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받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제사의 예절의 필요성과 제사 절차를 배우는 예절 교육과 제사를 지내는 대상인 공도공 오천 이문화 선생에 대한 교육 다음의 순서로 ‘잘 마쳤습니다. 하는 감사 인사로 제사를 지내는 것도 괜찮았을 것 같다. 이렇게 아쉬운 점들도 있었지만 오천교육관에서 보낸 시간들은 모두 나에게 큰 가르침을 주었다. 특히 단순한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은 경험을 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던 것이 소중한 경험이었다. 두 번째는 이곳에서 만난 친구들이다. 아는 사람이 한명도 없는 채로 와서 처음에는 모든 게 어색하고 낯설었는데 어느 새 이름도 알지 못하던 사람들과 밥을 먹고, 자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는 것이 신기했다. 먼 친척이면서 새로 만난 친구들이라는 생각에 뭔가 학교에서 사귀었던 다른 친구들과는 다른 오묘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기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2박3일이지만 나에게는 뿌리교육이 앞으로도 RP속 특별한 추억으로 기억될 것 같다. 0우
선 곳에서의 2박3일을 보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 뿌리교육이란 말을 들었을 때 그게 뭐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소한말 이였다. 그리고 이렇게 사람이 많을 줄도 생각 못했고 이렇게 먼 곳일지도 생각 못했다. 교육 받는 과정에서 솔직히 못 알아듣는 말이 훨씬더 많았지만 값진 대학생활에 대한 얘기를 들었을 때 뭔가 공감하는 것도 얻는 것도 많았다.처음 보는 사람들과 어울려 보낸 시간이 짧기도 하고 길기도 하지만 내 인생에 한번 뿐인 교육이라 더 보람차고 좋았던 거 같다. 0영
선 이곳 천안 오천교육관에 온 것을 굉장히 뜻 깊고 영광으로 생각하는 바이다. 나는 사실 나의 가문, 나의 성씨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지 않고 살아왔는데 이곳에 와서 인천이씨 공도공파의 뿌리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우리 가문을 빛낸 위대한 인물들이 어느 분이 계시는지,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나를 포함한 70여명의 또래들이 모두 동성동본이고 같은 핏줄을 이어받은 형제들이고 사촌지간이라 생각하니 그 든든하고 자랑스러움을 이루 말할 수 없다. 여기서 들은 수많은 강의와 좋은 말씀을 통해서 느낀 것은 나도 명예롭고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어서 우리 인천이씨 그리고 공도공파를 빛내야겠다는 생각이 수차례 든다. 이곳에서 받은 뿌리교육을 통해서 지혜롭고 격식 있고 큰 사람이 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인천이씨 가문의 어르신 분들께서 나와 같은 학생들을 해마다 이런 환경에서 이러한 교육을 무상으로 받게 한다는 것이 실로 놀랍다. 들어보니 이토록 우리 가문처럼 인재 양성에 힘쓰고 후손들의 발전을 위해 장학 사업까지 한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인천이씨 가문이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생각하니 매우 자랑스럽고 이런 자리가 매회 많아졌으면 하는 바이다. 수년 후에 내가 아이를 낳고 내 아이가 자라면서 인천이씨의 후손으로 태어난 것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위대한 가문인지 깨달았으면 좋겠다. 이런 뿌리교육이 그날까지 계속 이어진다면 내 아이도 무조건 보내야겠다. 나는 사실 인천이씨가 별로 유명하지도 않고 국가의 보탬이 된 역사적 인물도 들어보지 못했는데 조선시대, 고려시대를 거치며 수많은 위인들이 계속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그중에서도 조선건국의 기틀을 세운 역사인물 오천 이문화 선생. 이자겸의 난으로 유명하신 이자겸. 이 두 분이 특히 우리 가문이라는 것이 참으로 자랑스럽다. 우리 가문들을 통한 연구로, 수익금 활동을 통해 우리 선조들의 유적 발굴, 문화재복구 같은 활동이 하루 빨리 이루어졌으면 하는 생각이다. 이번 기회 말고도 훗날 시간이 남을 때 이런 자리를 한 번 더 가졌으면 좋겠다. 이번 교육을 마치고 돌아갈 쯤에 같이 생활하고 강의를 듣던 교육생들이 많이 생각날 것 같다. 모두 착하고 서로에게 잘해주며 그렇게 지냈다. 내심 솔직한 맘으로 장학금을 얼마나 주실지 기대가 크다. 아침에 일어나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기차를 타고 이곳에 올 때는 괜히 가는 거 아닌가. 너무 피곤하다. 어떻게 이틀이나 거기 있지 하고 비도 너무 많이 와서 상당히 불쾌했었는데 막상 이곳에 와서 지내다보니 재밌고 윗분들께서 너무 잘해주셔서 적응이 그리 힘들지 않았다. 마지막 날에 떠날 때 아쉽기도 할 것 같다. 우리들뿐만이 아니라 다른 성씨들도 이런 시간을 마련하여 자랑스러운 후손양성, 나아가 대한민국의 밑거름의 될 인물들을 키워냈음 하는 바람이다. 민0
2박3일이란 교육과정에 혼자 가는 거라 걱정도 많았지만 친구도 사귀고 조금 피곤했지만 교육시간도 재밌었습니다. 즐겁게 배우고 가는 것 같습니다. 처음엔 뿌리교육이 어떤 것을 어떻게 배우는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배우고 나니 새로운 것을 많이 배우고 인천이씨에 대한 많은 것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교육을 더욱 발전시키고 많은 인천이씨들이 이 수업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승0
2년 전에 언니가 뿌리교육을 다녀왔는데 이곳에 오면 친구들도 많이 사귀게 되고 배울 것도 많다고 저에게 뿌리교육을 가게 되면 열심히 잘 듣고 오라고 했는데 올 때부터 아는 애랑 오게 돼서인지 다른 아이들과 친해질 기회가 많이 없었던 것 같아서 많이 아쉽고 그리고 뿌리교육 오기 전에는 인천이씨 대학생 되는 아이들끼리 받는 교육이라기에 몇 백 명, 몇 천 명 될지 알고 뭔가 모르게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왔는데 이곳 오천교육관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생각했던 곳과 다르게 강의실에 들어와서 70명이 조금 안 되는 아이들이 앉아 있기에 조금 놀라기도 했고 뭐지? 인천이씨 대학생 되는 애들이 이만큼 적었나? 싶었는데 같은 인천이씨라도 그 안에서 종파(?)가 다르다는 것도 이곳 오천교육관에 와 서 알게 되었고 교육관에 와서 받은 책속에도 내가 사는 서변동(무태)에서만 보던 곳이 책속에 있는 것을 보고 뭔가 모르게 반가웠다. 나는 그곳이 뭐하는 곳인지도 어떤 곳인지도 몰랐었는데 뿌리교육에 오게 됨으로써 내가 몰랐던 것을 한두 개씩이라도 알아가게 되는 것이 보람 있게 느껴졌다. 아무튼 인천이씨만 봐도 반갑고 좋았는데 오천교육관에 오게 되서 이곳에 온 아이들은 인천이씨 안에서도 같은 종파라는 것을 알게 되서 더욱 가까운 사이처럼 느껴지고 친숙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오기 전에도 같은 동네에서 초등학교, 중학교를 같이 나온 애들 중에서 인천이씨인 애들이 이곳 오천교육관에 오는 것을 대충은 알고 있었는데 이곳에 와서 모르는 애들 속에서 아는 애들을 만나니깐 더욱 반갑고 아무튼 좋았다. 또 책을 읽다가 고려시대 인천이씨 인물고라는 주제에 내용을 읽는데 ‘이허겸’이라고 예전에 아버지께 한번 들었던 기억이 있었는데 이곳에 와서 듣고 배우고 또 읽게 되니깐 아버지로 통해 알고 듣게 되었던 ‘이허겸’ 어떤 분인지도 제대로 알게 되었고 다시 한 번 인천이씨에 대한 뿌리를 더욱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냥 이곳에 온 것만으로도 내가 인천이씨인게 뿌듯하고 뭔가 있는 집안 자식, 손녀가 된 기분이 괜히 들게 되었다.(ㅋㅋ)  중고등 학교 때 수업시간에 앉아있을 때 밀려오던 졸음을 참았던 그때 그 기억을 이곳에 와서 수업 들으면서 다시 한 번 더 느껴서 옛날에 고등학교 생각도 났고 조금 많이 졸았던 탓에 놓친 이야기가 많아서 아쉽고 기회가 된다면 인천이씨 뿌리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듣고 싶다. 아무튼 이곳에 오게 됨으로써 몰랐던 것을 많이 배워가는 것 같아서 좋았고 앞으로도 인천이씨 뿌리교육이 우리 밑에 아이들한테도 알려져서 아이들이 이곳에 와서 많은 것을 알아갔으면 좋겠다. 소0
2박3일 동안 천안에 뿌리교육을 하러 왔습니다. 장학금 50만원을 주신대서 뿌리교육을 하러 왔습니다. 오는 날에 아침에 기차를 놓쳐버려서 못갈까 봐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표를 반품하고 새로 표를 끊어서 타고 올수 있었습니다. 대구에서 천안까지 오는 길이 이렇게 먼 줄은 꿈에도 몰랐었습니다. 기차에서 자고 나니 천안역에 도착했습니다. 내려서 어떻게 가야할지 몰라서 비가 엄청 내리는데 우산을 쓰고 한참 서있었습니다. 결국 택시를 타기로 해서 택시를 타서 “오천교육관이요.”라고 택시기사아저씨한테 말을 하니깐 택시 기사 아저씨가 어딘지 모른다고 하셨다. 그래서 택시를 잠시 세운 뒤 내비게이션에 길을 검색해서 오천교육관에 도착을 할 수 있었다. 근데 너무 구석에 있어서 길 따라 오르고 올라와도 오천교육관이 잘 보이지 않았었다. 그래도 잘 도착해서 다행이었다. 교육관에 들어오니까 모르는 애들이 정말 많았다. 그 아이들이 같은 인천이씨라니 정말 신기했었다. 오자마자 점심을 먹고 자기소개를 했다. 정말 떨렸었다. 모르는 애들 앞에서 자기 소개하기는 정말 부끄러운 것 같다. 자기소개를 다하고 이야기 좀 듣다가 밖에 나가서 조상님에게 제사 드리는 방법을 보고 같이 절해보고 다시 들어와서 이야기 좀 듣다가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 또 이야기를 들었는데 잠이 와서 계속 잤더니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밥을 먹고 바로 이야기를 듣는 거라서 그런지 계속 잤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잠 잤던 게 아쉽다. 그리고 오늘 민요를 불렀을 때 재미있었다. 2박3일 동안 재미있는 경험을 많이 해보아서 좋았다. 2년 뒤에 동생보고 꼭 오라고 말해야 되겠다. 현0
녕하세요. 이0승입니다. 2박3일 동안 뿌리교육에 참여하여 좋은 경험 얻을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바쁜 사회생활 속에 저의 조상도 모르고 인천이씨에 대해서도 너무 모르고 있어 부끄러웠는데 강의를 듣고 책을 보면서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은 알게 되어 기쁩니다. 인천이씨 조상이 누구이며 어떤 분이었는지 지금은 누가 물어도 정확히는 답할 수 없지만 몰라서 답을 못하는 부끄러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허철회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무심코 잊고 있었던 우리 아버지의 할아버지 이름조차 모르고, 족보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몰랐지만 가문의 정체성과 인천이씨의 공도공파에 속한 인천이씨로 다시 일깨워 가서 기쁩니다. 정말 짧은 시간이지만 살아가면서 몰라도 되는 일이지만 알고 나니 이현승이라는 이름에 자부심이 생기고 우리 집 친척 말고 같은 조상에서 친족이 있다는 사실이 차가운 사회에서 조금이나마 따뜻해지는 것 같아 좋습니다. 혼자라는 쓸쓸한 느낌보다 대구 안에 같은 친족이 있어 신기합니다. 뿌리교육을 참여하지 않았다면 뿔뿔이 흩어진 마음이 하나로 모이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일 인상 깊은 강의는 이재도 교수님의 강의입니다. 정말 초. 중. 고 아무런 목표 없이 학원 갔다 학교 갔다, 남들이 다하니 나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반복적인 생활을 하였고, 목표가 없으니 내가 왜 공부를 해도 성적이 안 나오고 해도 안 된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는 생각이 후회됩니다. 교수님의 말씀 중 no pain, no again 이라는 고통 없이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대학교 1학기가 지나면서 내가 너무 편하게 살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또 ‘젊었을 때 가난한건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늙어서 가난하면 자기 잘못이다’는 구절의 뜻이 너무 와 닿았다. 늙을 때 가난한건 자기가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라서 자기의 인생을 너무 헛되게 한 것이다. 그리고 2박 3일 지내면서 남자 화장실 소변을 볼 때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여서 지나가는 사람과 눈 마주치니 상당히 민망하네요. 방송용 마이크가 작동시키면 잡음이 너무 심하게 들려서 목소리조차 소음으로 들리는 것 같아 안 좋습니다. 마지막 할아버지 산소를 뵈었는데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 있는 할아버지 산소에서 절을 해보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비가 와서 땅이 축축해서 할 수 없었는지, 저희가 절을 안 할까 해서 안했는지 모르지만, 저는 예의상 절을 해야 마땅할 것 같습니다. 무조건 절을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고개 인사도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다음 20기,21기..에선 절을 했으면 합니다. 원래 절을 하면 안 되는 건가요?  0승
직히 뿌리교육이라고 해서 별 기대 없이 왔다. 목요일 아침 5시에 이러나 허둥지둥 서둘러 전남에서 멀리 떨어진 천안까지 오게 되었다. 처음엔 혼자 전남 사람이고 아는 사람 하나 없어서 여길 내가 왜 왔을까 하고 우울해 있었다. 교육을 받고 시간이 지나면서 친구들과 밥을 먹고 지내면서 어느새 처음부터 같이 온 친구들처럼 친해져 집에 가는 날이 안 왔으면 하는 마음까지 생겼다. 그리고 여기 와서 내가 가장 많이 느끼고 반성한 게 있는데 그건 바로 강의시간에 ‘의지’에 대해서 강의를 들으며 느꼈다. 여태 내 성적과 지금 내가 다니는 대학에 대해서 난 문제가 무엇일까 하고 의문을 가졌고 아무 의용 없이 비전이 없다 생각하며 학교를 놀러 다니 듯했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나의 의지’였다. 의지가 부족한 난 대학만 탓했다. 강의를 듣는 내내 반성을 했고 다짐을 했다. 이제 1학년인데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려 했던 나를 반성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나의 의지만 강하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단 걸. 처음은 어렵겠지만 미래의 나를 위해 굳은 의지로 한걸음 나의 목표로 다가갈 것이다. 나에게 이런 깨들음을 주신 이 프로그램이 너무 고맙다. 0정
기 전날 무엇을 배우게 될까 생각하며 잠이 들었고, 당일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섰다. 4시간 30분가량 기차를 타고 천안 오천교육관에 도착하자마자 예절에 대한 비디오를 보게 되었다.여자와 남자의 다른 예절을 지키는 방식을 새로 배우게 되었다.  식사 후 고유제를 보러 갔는데 친구들이 어른들이 입었던 것만 보았던 옷을 입고 제를 지내는 것을 보니 기분이 남달랐다. 비만 안 왔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그 다음 또 강의를 들었는데 처음에는 가만히 앉아서 2시간 버티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전날 잠을 많이 못자서 그런지 잠도 쏘다져서 깨어있느라 곤혹을 치렀다. 다음날 우리의 할아버지인 오천 이문화 선생님에 대해 배웠는데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다. 많은 자료가 없어서 업적을 제대로 알고 이해 할 수 없어 안타까웠다. 다음에는 대학생활에 대한 조언과 함께 많은 이야기를 들었으며, 민요를 부르는 시간도 가졌다. 재미있었고 인천이씨 가문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되어 좋은 시간들이었다. 연0
저 이 자리를 마련해주신 이영복 회장님을 비롯한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고 이를 통해서 인천이씨에 대해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짧고도 긴 2박 3일을 통해 전국에 있는 11학번 인천이씨인 학생들이 모여 교육을 받으니 좋은 추억이 되기도 하고, 뜻 깊은 자리였습니다. 주위 친구들에게 본관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인천이씨는 한명도 없어 ‘인천이씨는 진짜 드문 성씨구나’라고 생각하거나 친구들에게 인천이씨라고 말하면 처음 들어본다는 반응을 보이곤 했습니다. 그럴 때면 인천이씨에 대해 설명해주고 싶은데 알고 있는 지식이 별로 없어 설명을 못했었는데 뿌리교육을 통해 인천이씨의 시조는 이허겸 할아버지이고, 인천이씨는 허 씨에서 비롯되었고, 김해 김 씨와도 관련된 성이며 오천 이문화 선생에 대해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토요일에 학교 행사가 있어 참석해야 하는데 뿌리교육 받으러 가야 해서 참석 못한다고 하니 그런 교육도 있느냐면서 왜 우리는 그런 교육이 없느냐며 부러워해서 인천이씨라는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리고 혼자 마산에서 천안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기대 반 설렘 반으로 오게 되었는데 유적지인 오천재도 직접 가서 이문화 할아버지 영정도 보고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20기,21기 등 꾸준히 뿌리교육이 실시되어 인천이씨에 관한 교육을 하여 자신의 뿌리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알 수 있도록 계속된 지도 해주셨으면 합니다. 진0
도공파의 파조에 대해서 알 수 있었고 오천 이문화 할아버지의 업적 생애 등을 알았다. 세대와 세손에 대한 개념을 알게 되었다. 인천이씨와 김수로왕의 관련성과 우리 집안이 고려시대의 활동이 많았다는 점과 이문화 할아버지께서 조선 건국의 기틀을 세웠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김씨, 허씨, 이 씨 이 3종류의 성이 한 핏줄이라는 것도 알았다. 나는 별 관심이 없던 나의 시조와 공도공파의 파조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하는 부분에 대하여 알게 되었고 나는 인천과 가까운 부천에 살면서 시조할아버지의 묘소에 가봐야겠단 생각이 들었고, 여기 뿌리교육을 하면서 나이는 비슷하지만 애들이 나보다 대부분 촌수가 높아서 아버지뻘, 할아버지뻘들과 친구가 되었고 앞으로 인천이씨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값진 대학생활시간에서 고통 없이는 결과도 없다는 걸 들었다. 또 가야가 가락국이라는 명칭을 알게 되었다.난우리나라 역사 중에서 관심 없던 가야의 건국과 신라의 병합되기까지를 뿌리란 책에서 알았고 이문화 선생의 인맥과 성품 이런걸. 갖추신 분이 우리 파조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인천에 대해서 미추홀이란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인주 등 처음 듣든 이름도 알게 되었다. 나는 뿌리교육을 받으면서 나는 어떤 사람의 후손인가를 알게 되어서 정말 좋은 경험을 쌓고 가는 것 같다. 경0
래 전부터 뿌리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왔다. 어느 누구에게 말해도 이런 가문교육을 하는 집안은 없었기 때문에 이곳에 오기 전부터 나는 인천이씨에 대한 자부심이 커져만 갔다. 그러다 이곳에 오게 되었고 정말 좋은 교훈을 얻고 가게 되었다. 얼굴 한번 보지 못했던 먼 친척들이 너무나 가깝게 느껴졌고 이곳에 계신 모든 어른들 또한 너무나 따뜻하고 큰엄마, 큰아빠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그 분들 또한 우리를 자식처럼 대해주시는 것 같았고, 우리 식사나 간식 챙겨주는 것 모두가 애정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2박3일간의 짧은 기간 이어서 솔직히 모두와 친해질 시간도 굉장히 적었고 한 번에 많은 수업을 듣다 보니 집중력도 떨어졌다. 하지만 이 모인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의미 있는 것이고, 우리의 뿌리를 지키고 알리는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멋지고 대단하며 이런 집안에 태어난 것에 감사한다. 이번 교육을 통해 그동안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던 내 뿌리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앞으로 우리도 이 뿌리 알리기에 동참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2박3일간의 교육이 진정한 인천이가의 일원이 되는 관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교육을 해주신 인천이가 어른들과 교수님들 모두 나이가 적지 않으셨는데 오랜 시간동안 모두 열정적으로 교육에 힘써 주셨다. 그것에 비하면 내 수업태도는 정말 무례하다. 이 소감문도 교육시간에 쓰고 있으니까.. ㅠㅠ 아.. 이 소감문 쓰는 것도 엄청 의미 있는 것 같다. 단지 생각만 했던 것을 정리 할 수 있게 도와주고 지금처럼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으니... 교육 끝나고 써야겠다. 솔직히 이 씨 하면 다른 지역 이 씨가 훨씬 많다. 살면서 인천이씨를 본적 또한 없다. 그래서 굉장히 보잘 것 없고 그런 성씨도 있냐고 할 때 주눅이 들었었는데, 이번 교육을 통해 적은 수가 더욱 값져 보이고 보이지 않는 우리 조상의 흔적들을 우리가 더욱 빛내주어야 한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짧은 기간 동안의 교육이었지만 우리의 뿌리를 확실히 다지는 데는 그리 짧은 시간이 아니었으며 가족의 분위기와 우리를 최대한 배려하여 밤잠까지 줄여가며 우리의 쾌적한 숙식에 힘써주신 모든 어른들께 감사한다. 여기 있는 모두가 한 가족이라는 것이 아직도 새롭고 즐거우며 값지다. 또한 지금 대학교 2학년 3학년 언니 오빠들 그리고 그 이외의 모든 가족들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안타깝기도 하다. 오천 홈페이지가 있으니 그것을 통해 19기 이외의 다른 가족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고, 지금 이 뿌리교육을 기반으로 더욱 발전, 번성하여 진정한 한 뿌리 가족으로서 더 큰 만남을 바라는 바이다. 0영
19회 뿌리교육을 수강하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는 것 같다. 이곳에 오기 전엔 잘 알지 못했던 예법과 나의 뿌리에 대해서 더욱 상세하게 알게 된 것 같고, 인천이씨의 역사와 이문화 할아버지의 업적을 돌이켜보며 우리 인천이씨 가문에도 훌륭한 조상님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또 평소에는 잘 모르고 그냥 했던 절하는 법이나 대, 세, 손 등의 자세한 뜻을 배웠고 값진 대학생활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남은 대학생활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오천 이문화평전을 집필하신 허철회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주변의 가장 작은 것부터 알아나가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2박3일의 교육은 정말 알차고 시간이 아깝지 않은 시간이었다. 0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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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고려대제 참배 2012-10-30 623
182 2012년 뿌리교육을 마치고 운영인 2012-09-11 1667
181 恭度公의 따님 興寧府大夫人 墓誌와 石函 寶物指定 운영인 2012-08-08 1053
180 대구광역시의회 의장(34세 재술) 고유 [1] 운영인 2012-07-25 1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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