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관리인
작성일 2008-12-29 (월)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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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법도와 질서
                                                                                                                                 

뿌리연구위원 35세 이규정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여러 가지 법도와 질서가 있다. 우리가 쓰는 말씨에도 법도와 질서는 있어 우리는 예로부터 이 말씨의 법도와 질서에 민감했고, 이를 대단히 존중했다. 그리고 가정교육에서도 가장 먼저 자녀들에게 말씨부터 제대로 가르쳤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 말씨에 대한 법도와 질서가 무너지고 있어 안타깝다. 아이들을 가르쳐야 할 어른들부터 이에 무관심하니 예삿일이 아니다.

 이것은 요즘 청소년들이 인터넷에서 쓰는 희한한 약어(略語)나, 어른 사회에서도 함부로 쓰이는 외래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하기는 어느 지하철역에서는 ‘한 줄로 서기 no, 두 줄로 서기 ok’ 이런 식의 경박한 표현을 현수막에 써서 걸어놓고 있지만 이런 것도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지금 퍼지고 있는 게 아니고 이미 퍼질 대로 퍼져 있는 이상한 말 몇 가지만 들어 본다. ‘발팔’이란 말과 ‘교육생’이란 말, 그리고 누구에게나 이름 석 자 끝에 ‘님’자만 붙이면 된다는 생각에서 마구 쓰이는 ‘님’이란 말, 사람이 아닌 짐승이나 사물을 보고도 ‘이애’, ‘저애’ 하는 것. 또 한 가지, 무슨 말 끝에 ‘자(者)’자를 붙이면 낮추는 것 같다고 생각한 나머지 ‘인(人)’자를 붙여 쓰려는 것, 그리고 ‘사모님’이란 말이 너무 흔하게 쓰이는 일 등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먼저 ‘반팔’, 이 말은 반소매를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반소매를 반판이라고 하면 말이 안 된다. 그것은 반바지를 반다리라고 하지 않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반팔은 팔의 반이 없는 장애인이지 소매가 반만 있는 옷이 아니다. 그런데도 거의 모든 국민들이 이런 말을 쓰고 있다. 그 까닭을 생각해 보니 방송, 유명신문의 기사에서도 ‘반팔’이란 말을 쓰고 있어 그런 것 같다. 어째서 반소매가 반팔인가. 기가 차다 못해 한심스럽기까지 하다. 양식 있는 인사(방송국과 신문사 종사자)들도 예사로 쓰고 있는 이 말, 무신경에 빚은 이런 되잖은 말을 쓰지 말기를 간절히 바란다. ‘민소매’를 왜말인 ‘소데나시’라고 하다가 이제 많이 고쳐졌는데, ‘반팔’도 얼른 ‘반소매’로 고쳐 쓰자.

 그 다음 ‘교육생’이란 말, 이 말은 피교육자, 수강자를 뜻한다.

 그런데 이 ‘교육생’이란 것은 말이 안 된다. ‘교육(敎育)’이란 말 자체가 ‘가르치고 기르다’는 뜻이다. 그래서 교육자는 가르치고 기르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같은 ‘교육’이란 말끝에 ‘생(生)’이 붙는다고 ‘배우는 사람’이란 뜻으로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교육생’이 ‘피교육자’, ‘수강생’이란 말을 높여 주는 뜻의 말로 될 수 없다. 그냥 아주 이상한 말일 뿐이다. 아마 학원 같은데서 ‘피교육자’, ‘수강생’을 좀 높여서 부르느라고 누가 무심코 지어낸 말인 것 같은데, 이것을 무신경한 언중이 따라 씀으로써 퍼진 것 같다. 그러나 거듭 강조하지만 피교육자는 나이가 아무리 많고 식견이 높아도 피교육자이거나 수강생, 혹은 수강자이지 교육생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니 이런 말을 함부로 따라 쓰면 곤란하다. 권위 있는 교육기관에서조차 이런 말을 쓰고 있어 더욱 한심스럽다.

 ‘님’이란 말, 이 말은 한자어 ‘씨(氏)’와 같은 뜻이다. 아시다시피 ‘씨’는 평교간의 성(成)이나 이름 밑에 붙여 상대방을 높이는 말이다. 따라서 이 ‘님’을 누구의 이름 밑에나 붙여 함부로 쓰면 곤란하다. 은사나 직장 상사, 잘 아는 대선배에게는 반드시 그 작함이나 적당한 호칭을 이름 밑에 쓰고, 그 다음에 ‘님’자를 붙여 써야 한다. 박○○ 회장님, 김○○ 사장님, 이○○ 선생님 이렇게. 물론 관공서에서의 민원인이나, 병․의원에서의 환자들에게는 신분을 잘 알 수 없으므로 편의상 그냥 ‘아무개님’하고 부를 수 있겠다. 그러나 이것도 사실은 어쩔 수 없어 묵인하는 것이지, 옳음 호칭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아주 많은 대선배나 직책이 확실한 직장의 상사 학교의 은사, 사회적  지위가 공인된 사람들의 이름자 바로 다음에 ‘님’자만 붙여 부르거나 쓰면 큰 실례인 줄 알아야 한다. 김벙한 님, 유치환 님(모두 이미 돌아가신 분들이지만), 이렇게 쓰면 큰  실례다. 이미 오래 됐지만 어느 해 연말에 요산 김정한 선생 댁에 갔더니 탁자에 연하장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는데, 봉투에 거의 ‘김정한님’이라고 쓴 걸 보고 크게 경악한 바 있다. 이름 밑에 붙일 수 있는 호칭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것을 거의 모르고 누구에게나 이름 다음에 바로 ‘님’자만 붙이면 존칭, 그것도 극존칭이 되는 줄 알고 있다 젋은 문인들도 대다수 그렇다. 가장 잘난 체, 가장 똑똑한 척하는 사람들의 이런 실수를 보면 딱하다. 잘못이라고 나무라면 오히려 항의할 것이니 더욱 그렇다.

 무엇(아무거나)을 보고 ‘얘’, ‘쟤’ 하는 말을 생각해 보자. 요즘 젊은 사람들은 강아지를 보고 ‘얘, 쟤’한다. 심지어 신발 가게에서 신발을 고르면서도 “얘가 마음에 든다.” 혹은 “쟤가 어떨까?”한다. ‘얘’나 ‘쟤’는 ‘이 아이’, ‘저 아이’준말이다. 아이는 사람에게만 쓰는 말이지 짐승이나 사물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그런데도 왜 강아지를 보고 ‘얘, 쟤’ 할까. 하기는 강아지를 자기 아들이나 딸로 생각하는 애견가들도 있지만 강아지가 아무리 귀엽고 정이 들어도 그것을 아들딸로 표현해서는 그런 망발이 없다. 강아지가 자식이면 자기도 개가 되는 것이고, 자기를 개라고 하면 자기의 조상도 개라는 뜻이니 그런 결례가 있겠는가.

 ‘자(者)’자 대신 ‘인(人)’자를 써야 존경의 뜻이 있는 줄로 알고, 여태 써오던 ‘자’자를 기피하려는 현실에 대하여 한 마디 하고자 한다.

 지난 번 대통령 선거 때 대통령 ‘당선자’를 ‘당선인’으로 불렀던 일이 가장 대표적이고, ‘불구자’로 부르던 말을 ‘장애자’라 부르다가 요즈음 ‘장애인’으로 부르고 있는 일 등이 떠오른다.

 ‘자(者)’의 사전적 뜻의 하나가 ‘놈 자(者)’이기는 하지만 이때의 ‘놈’은 욕이 아니다. 사람이나 일, 물건에 두루 쓰는 말이다. 인격자, 교육자, 학자, 토론자, 발표자, 전자, 후자, 환자 등에서 보는 바와 같다.

 내가 가지고 있는 크고 작은 10여 종이 넘는 국어사전을 모두 다 찾아 봤다. 나의 학생시절에 장만한 큰 국어사전(1958년판 동아출판사)인 『국어새사전』에는 “사람 일 물건 따위의 뜻, 명사 아래에 붙여서 일에 능통한 사람이라는 뜻”으로만 풀이하고 있다. 1990년 한국의 동광출판사에서 북한의 대형(3권짜리) 『조선말사전』에서 “사람 또는 놈이란 뜻을 나타낸다”면서 그 용례를 들었지만 얕잡음의 뜻이 있다고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1992년에 나온 어문각의 『우리말큰사전』(4권짜리)과 그 전후에 나온 여러 국어사전들에는 대개 “사람을 얕잡아 일컫는 말”이라고만 풀이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자’를 버리고 ‘인’으로 쓰고 싶어 하는 것이 전혀 근거 없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하지만 기왕 쓰고 있는 인격자, 교육자, 학자, 발표자, 당선자 등에서 보이고 있는 ‘’를 버리고 새삼스럽게 ‘당선인’이라고 해야 할 까닭은 없다고 보인다. 그리고 요즘 국어사전의 ‘자(者)’에 대한 풀이가 지나치게 좁은 의미로만 되어 있는 듯이 보인다. 왜 ‘자’자가 좋게 쓰이는 하고 많은 용례는 하나도 들지 않고 있는지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사모님’이란 말. 여러 권의 국어사전에 ‘사모(師母)’는 “스승의 부인을 높여 부르는 말”, 혹은 “남으로서 자기보다 위되는 상대자의 부인을 높여 부르는 말”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식당에 가서도, 술집에 가서도 손님들은 여주인을 보고 사모님이라고 부르고, 길을 가다가도 옷만 잘 입은 여인에게는 무조건 사모님이라 부르니 우습다는 것이다. 언어의 인플레이션 현상이라고 할까. 마치 아무나 보고 ‘사장님’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사람의 말씨는 인격의 표징이다. 우리는 말씨 하나로써도 스스로의 인격을 돋뵈게 할 책무가 있다. 배운 사람들은 더욱 그러하다. 날로 달로 우리말이 추해지고 우리말의 법도와 질서가 허물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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