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종회
작성일 2010-08-28 (토) 13:57
ㆍ추천: 0  ㆍ조회: 2417      
IP: 59.xxx.162
환성정(喚惺亭) (1)

- 고고한 선비, 임진란 팔공산 의병장 태암 의주의 학문과 충의가 깃든 정자-

1. 환성정의 건립과 태암 이주

환성정은 태암(苔巖) 이주(李?)가 1582년(선조 15)에 대구의 북쪽 무태 금호강가에 건립한 정자이다. 이주는 1556년(명종 11s)에 대구의 수성 파잠(파동)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7세에 조조부인 참봉 이한(李澣)에게 처음으로 글을 배우기 시작하였는데 11세에는 부친 소재(疏齋) 이문성(李文星: 1531~1571)의 명으로 계동(溪東) 전경창(全慶昌: 1532~1585) 선생의 문하에 나아가 공부하였다. 15세에 무태리로 이거하였는데 이듬해 부친께서 타계하였다.

 


이주는 조선 태종조에 대제학을 역임한 공도공(恭度公) 이문화(李文和: 1358~1414)의 8대손이다. 그의 선계(先系)는 경기도 광주에 살았는데 5대조 퇴은(退隱) 이말흥(李末興)이 연산군의 혼조(混朝)에 창녕현감을 그만두고 대구의 파잠으로 옮겨와 정착하였다. 이후 이주가 무태로 이거하기 이전까지 이곳에서 세거하였다. 이주의 현손 만오당(晩悟堂) 이인제(李仁濟: 1685~1761)는 ‘파잠감선세구거(巴岑感先世舊居)’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어느 해에 처음으로 이곳에 복거(卜居)하셨던가?

 선대의 유적을 생각하니 아득하여 다함이 없구나.

이곳에 오셔 후손들에게 천추의 업(業)을 넉넉히 드리우셨는데

 비탈진 언덕에 다만 옛터만이 남아 있음을 크게 한하노라.

 佩竹何年始卜居,

 先公遺蹟杳無餘.

 蘇來裕後千秋業,

 痛恨偏邱但有墟.”              (『만오당집』)

위의 시에서 이인제는 선대가 무태로 이거하기 이전에 살았던 유허지인 파잠의 옛 집터를 방문하여 옛 일을 회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에서 ‘선대가 이곳에 오신 뜻은 후손들에게 천추(千秋)의 업(業)을 이루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여 선조의 유지를 받들지 못한 후손이 미약함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주는 무태로 이거한 12년 후인 27세에 금호강 북쪽에 환성정을 건립하게 되는데 그는 이 정자를 젓기 4년 전에 선친의 묘소가 있는 무태의 대곡에 서실을 짓고 대곡정사(大谷精舍)라고 하였다. 이 정사는 후에 육휴당(六休堂)으로 편액을 고치고 자신의 별호로 사용하였다. 그가 지은 기문(記文)을 살펴보면 육휴당은 장수(藏修)의 장소로, 환성정은 유식(遊息)의 장소로 삼아 성리학의 공부에 전념한 것을 알 수 있다. 환성정 기문의  앞부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옛적에 서암사의 승려가 매일 스스로 묻기를 ‘주인옹이 깨어 있는가?(主人翁惺惺否)’라고 하고, 이어서 답하기를 ‘깨어있다.(惺惺)’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곧 옛 사람이 항상 마음을 깨어 있게 하는 방법이다.(常惺惺法) 하늘이 인간에게 본성을 내림에 옛날에는 넉넉하게 하고 지금은 부족하게 하지 않으니 지금의 사람이 곧 옛 사람인데 또 어찌 자포자기(自暴自棄) 하겠는가?

하늘이 이 마음을 사람에게 부여하여 한 몸의 주인이 되게 하였다. 그러므로 본원(本源)을 함양(涵養)하여 능히 그릇되고 편벽된 것을 제거하여 이 마음을 보존하여야 한다. 이것은 마치 깨끗한 거울에는 한 점의 더러운 티끌도 없고 한 부분도 매몰된 것이 없어서 사방팔방에서 광명이 찬란히 이르는 것과 같다. 그래서 방촌(方寸: 마음)에 거두어들임에 태극(太極)이 내 몸에 있고 그것을 펼침에 만사(萬事)가 되어 그 용(用)이 다함이 없으니 생각을 여기에 두어 견고하게 지키는 것이 사람이 사람 되는 실상(참모습)이고 이른바 항상 마음을 깨어있게 하는 방법이다.“)『태암집』「환성정기」)

위의 글은 모두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본성을 보존하여 마음을 바르게 하는 방법을 기술한 것이다. 여기에서 ‘주인옹’은 ‘마음[心]’을 말하고 ‘성성(惺惺)’은 ‘일깨운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환성(喚惺)의 의미는 ‘마음을 불러 일으켜 일깨운다(盖取喚起主翁, 惺惺之義也)’는 뜻이다.(9대손 이억상의 「환성정 중수기」) 이것은 맹자가 말한 ‘놓아버린 마음을 구하는 것(求放心)’이다.

이주는 성성(惺惺)이라는 말을 불가(佛家) 승려의 자문자답에서 취하여 설명하고 있으나 그는 유가의 경(敬)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성리학의 개념과 체제를 확립하여 그 토대를 개념과 체제를 확립하여 그 토대를 구축한 정이천(程伊川: 1033~1107)의 문인인 사상채(謝上蔡, 이름은 良佐: 1050~1103)는 “경은 항상 (마음을) 깨어 있게 하는 방법이다.(敬是常惺惺法)”라고 말하였다.(『심경』권1, 易坤六二)

위의 글에서 ‘방촌(方寸: 마음)에 거두어들임에 태극(太極)이 내 몸에 있고 그것을 펼침에 만사(萬事)가 되어 그 용(用)이 다함이 없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이일분수(理一分殊)를 말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원리를 터득하여 정심(正心)함으로써 거경(居敬)의 궁극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10.6.4 유림신문

  0
3500
60 인천의 유래 운영 2018-04-12 1072
59 시호(諡號)문자의 정의 관리자 2016-11-21 1298
58 지오 이경희선생의 민족독립운동 [1] 서 봉 2016-09-13 3284
57 34세 이재욱 선생의 민요발표회를 보고 종회 2011-11-15 2032
56 東學農民革命 과 李芳彦 將軍 2011-10-07 1334
55 환성정(喚惺亭) (10) [2] 관리인 2011-05-25 2431
54 환성정(喚惺亭) (9) 관리인 2011-05-24 2113
53 환성정(喚惺亭) (8) 관리인 2011-04-18 2191
52 환성정(喚惺亭) (7) 관리인 2011-03-03 2150
51 환성정(喚惺亭) (6) 관리인 2011-02-17 2094
50 환성정(喚惺亭) (5) 관리자 2010-12-16 2255
49 환성정(喚惺亭) (4) 공도공종회 2010-10-28 2378
48 환성정(喚惺亭) (3) 공도공종회 2010-10-01 2114
47 환성정(喚惺亭) (2) 종회 2010-08-28 2044
46 환성정(喚惺亭) (1) 종회 2010-08-28 2417
45 보학 기초용어 운영인 2010-02-02 1973
44 중국 옥룡 설산 여행기 관리인 2008-12-29 2423
43 말의 법도와 질서 관리인 2008-12-29 1859
42 공도공의 스승 무송 윤택 관리인 2008-11-18 2774
41 32世 담헌(淡軒) 이성우(李盛雨) 관리인 2008-08-25 2461
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