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공도공종회
작성일 2010-10-01 (금) 16:06
홈페이지 http://www.icl.or.kr
ㆍ추천: 0  ㆍ조회: 2102      
IP: 202.xxx.77
환성정(喚惺亭) (3)
 

-고고한 선비, 임진란 팔공산 의병장 태암 이주의 학문과 충의가 깃든 정자-


3. 환성정 강학과 임진왜란

1) 태암 이주의 학문

 태암 이주(李輈: 본관은 인천)는 7세에 처음으로 글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9세에 『소학』을 배웠는데 ‘부모를 사랑하고 어른을 공경해야 한다.(愛親敬長)’라는 구절에 이르러 읽기를 멈추고 “사람 되는 도리가 이 밖에 있지 않다.”라고 하였다. 10세에 계동 전경창 선생을 처음으로 뵙고 이듬해에 계동정사(溪東精舍)에서 계동선생의 가르침을 받았다.

 이주가 경전을 공부한 과정에 대하여 그의 「연보」를 통하여 살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소학』은 앞에서 제시한 바와 같이 이미 어릴 때 공부를 하였고 12세에 『대학』, 13세에 『효경』과 『논어』를 공부하였다. 21세에는 『주자서』를 공부하였고, 25,6세에 『심경』과 『근사록』을 강론하였다. 이것으로 보아 이주는 이미 20세 이전에 사서(四書)를 비롯한 유학의 기본 경전을 공부한 것으로 보인다.

 27세에 이르러 금호강 가에 환성정(喚惺亭)을 짓고 강학을 하였는데 이 정자는 『대구읍지』(영조연간 발행) 「누정(樓亭)」편에 수록되어 있는 6새의 정(亭)과 당(堂) 가운데 하나이다. 그가 9월 9일 중양절에 환성정에 올라 지은 시(重九, 登喚惺亭)는 늦가을 환성정 주변의 정경을 잘 나타내고 있다.



 산정(山亭)에 올라 돌아보니 흥취가 크게 일어나는데

 구월의 가을 중 좋은 날 중양절이라네.

서리 내려 초목에는 잎이 다 떨어졌는데

 울타리 옆에 늦게 핀 국화 꽃 향기가 가장 사랑스럽다네.

 回首山亭引興長,

 九秋佳日屬重陽.

 霜前草木俱零落,

 最愛籬花晩節香.                 (『태암집』)

 이주는 29세에 모친의 명으로 향시[鄕解]에 나아가게 된다. 그는 생원과 진사 두 시험과 동당시(東堂試)에 모두 장원을 하여 삼장원(三壯元)으로 칭송되었다. 이듬해 30세 봄에 한양에서 회시(會試)를 보았는데 강경(講經)을 시험할 때 두루 막힘이 없었으나 『대학』에 이르러 의심나는 곳이 있어 외우기를 멈추고 생각에 잠기었다. 이때 계동선생이 시험을 감찰하는 관리로서 장막 밖에 있다가 손톱으로 가죽신을 긁어서 글자를 써 보여주니 그는 돌아보지 않고 의연히 일어나 과거장을 나갔다. 그는 계동선생에게 “임금 섬김을 구하고자 하면서 임금을 속이는 일을 하는 것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고 하였다. 이후로 그는 과거를 단념하고 위기지학(爲己之學)에 전념한 것으로 보인다.

 이주의 환성정 강학은 그가 회시에 응시한 이후에 나타는데 32세에는 『주자서(朱子書)』와 『주자어류(朱子語類)』를 강학하였는데 이해 4월에 임진왜란이 일어남으로 그의 강학은 중단되었다. 그가 환성정에서 강학을 재개한 것은 왜란이 종전된 1년 후인 44세 때이다. 이해 3월에 여러 벗들과 함께 정자(程子)의 『이정전서(二程全書)』와 주자의 「봉사(封事)」를 강학하였다. 이듬해 45세에는 여러 경전과 제자서(諸子書)를 살펴 주요한 글귀를 선정하여 「성학조열(性學條列)」을 저술하였다. 또 호를 태암(苔巖)이라고 하였는데 ‘푸른 이끼와 흰 졸이 있는 산수 사이에 깃들어 산다는 의미 (蒼苔白石間棲息之意)’이다.

 지금까지 이주가 환성정에서 강학한 서적을 살펴보면 한결같이 정자와 주자가 저술한 성리학에 관한 서적임을 알 수 있다.

 이주는 정주학(程朱學)을 계승한 퇴계선생을 사모하였는데 15세에 선생의 부음을 듣고 나이가 어려 문하에 나아가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하였으며, 또 35세에는 낙재 서사원과 청량산을 유람하기로 하였으나 몸이 아파 함께 가지 못하였다. 그는 33세 때 연경서원의 화암(畵巖)에서 노닐면서 퇴계선생이 지은 시를 차운(次韻)하였는데 그 시(敬次退溪先生畵巖韻)는 다음과 같다.



 기암이 그린 듯 천연으로 이루어졌으니

 하늘 향해 깍아지른 듯 서서 몇 겁의 세월 지냈던가?

 옛적 퇴계선생의 가르침을 생각하니

 취하고 꿈꾸는 사람들 깨우기에 충분하네.

 奇巖如畵自天成,

 削立層空幾劫經.

 億昔退陶夫仔訓,

 剩敎醉夢各醒醒.            (『태암집』)


 위의 시에서 ‘옛적 퇴계선생의 가르침 생각하니’라고 한 것은 퇴계선생의 가르침을 배우고자 하는 이주의 심사(心事)를 나타낸 것이고, 또 ‘취하고 꿈꾸는 사람들 깨우기에 충분하네.’라고 한 것은 퇴계선생께서 세인(世人)들에게 끼친 교화에 대하여 말한 것이다.

 1598년(선조 31) 임진왜란이 종전되자 이주는 연경서원 옛터에 학당(學堂)을 세워 동주(洞主)가 되어 괴헌 곽재겸, 모당 손처눌, 투암 채몽연 등과 더불어 한 달에 세 번 통강(通講)을 하였는데, 이것은 서사원의 선사재(仙査齋) 강학과 손처눌의 영모당(永慕堂) 강학으로 이어져 16세기 대구지역 학술문화의 르네상스(Renaissance)를 연 시원(始原)이 되었다. (『연경선사통강록』,『영모당통강제자록』) 그는 또 관찰사 우복 정경세에게 학교를 설립하여 교육을 하는 것이 급선무임을 건의하였으며, 대구향교와 연경서원의 복원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대구향교 이건 중건 때에는 상량문을 지었다. 관찰사 벽오 이시발은 이 전말을 서원의 벽에 적었다.

 그는 여러 학자와 더불어 강학을 하며 학문을 연마하였는데 21세에는 임하 정사철 선생을 찾아뵙고 여러 날 강론을 하였으며 26세에는 곽재겸의 서재에서 동강(東岡) 김우옹(金宇顒)선생과 그 중형 김우용(金宇容), 노탄(蘆灘) 곽삼길(郭三吉)과 더불어 『심경(心經)』과 『근사록(近思錄)』을 강론하였다. 34세에는 무흘정사(武屹精舍)를 방문하여 한강 정구 선생을 찾아 뵙고, 『서명(西銘)』의 ‘민오동포(民吾同胞)’에 대하여 강론하였따. 또 여헌 장현광과 향리의 벗 곽재겸, 서사원, 류오신, 손처눌, 채몽연 등과도 강론을 하며 책선(責善)과 상장(相長)을 하였다.

 이주가 경전에 대하여 논 한 것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그는 『소학』과 『대학』을 중시하였는데 ‘『소학』은 사람을 만드는 틀’이라고 하고, 이로써 오륜(五倫)을 알게 하고 청소 및 사람들과의 응대 등 기본적인 예절을 익히게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대학』은 삼강령(三綱領)과 8조목을 알아야 하는데 ‘격물(格物)’이 그 바탕이 된다고 하였다. 이것은 격물을 통하여 이치[理]를 궁구하여 수제치평(修齊治平)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그는 이것이 학문을 하는 순서라고 하였다.(「학규(學規)」)

 그는 또 “『논어』와 『맹자』는 자와 저울과 같다. 사물을 헤아릴 때 이로써 장단(長短)과 경중(輕重)을 볼 수 있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사람들이 공자와 맹자의 말씀에 의거하여 사리를 판단하여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그 외에 그는 『시경』,『서경』,『주역』,『춘추』에 이르기까지 그 책이 나타내고자 하는 요체와 효용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리고 『심경』은 「서문」의 말을 인용하여 ‘내(川)를 막는 기둥이고 방향을 가리키는 수레이며 어둠을 밝히는 거울’이라고 하였고, 『근사록』은 ‘사서(四書)의 기초가 되는 책’이라고 하였다.(「성학조열」)

 그가 기해년(1599년, 선조 32) 봄에 대곡정사에서 『심경』을 읽고 제생에게 읆어 보인 시(己亥春 , 在大谷精舍, 讀心經, 伋示諸生)를 읽어 보면 그가 성현(聖賢)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아 경(敬)을 실천하고 있는 고고한 선비임을 알 수 있다.



 인(仁)은 편안한 집이고 덕(德)이 있는 사람은 이웃이 있으리니

 아침 저녁으로 책 속에서 성인(聖人)을 만나네.

 천년을 전한 마음 차가운 물속에 비치는 (가을)달과 같으니

 흉금은 깨끗하여지고 정신은 더욱 맑아지네.

 仁爲安宅德爲隣,

 朝暮書中遇聖人.

 千載心如寒水月,

 襟期灑落更精神.                       (『태암집』)

                                                                               2010. 9.15 儒林新聞

  0
3500
60 인천의 유래 운영 2018-04-12 853
59 시호(諡號)문자의 정의 관리자 2016-11-21 1258
58 지오 이경희선생의 민족독립운동 서 봉 2016-09-13 2754
57 34세 이재욱 선생의 민요발표회를 보고 종회 2011-11-15 2016
56 東學農民革命 과 李芳彦 將軍 2011-10-07 1319
55 환성정(喚惺亭) (10) [2] 관리인 2011-05-25 2417
54 환성정(喚惺亭) (9) 관리인 2011-05-24 2102
53 환성정(喚惺亭) (8) 관리인 2011-04-18 2184
52 환성정(喚惺亭) (7) 관리인 2011-03-03 2138
51 환성정(喚惺亭) (6) 관리인 2011-02-17 2076
50 환성정(喚惺亭) (5) 관리자 2010-12-16 2201
49 환성정(喚惺亭) (4) 공도공종회 2010-10-28 2365
48 환성정(喚惺亭) (3) 공도공종회 2010-10-01 2102
47 환성정(喚惺亭) (2) 종회 2010-08-28 2007
46 환성정(喚惺亭) (1) 종회 2010-08-28 2390
45 보학 기초용어 운영인 2010-02-02 1960
44 중국 옥룡 설산 여행기 관리인 2008-12-29 2402
43 말의 법도와 질서 관리인 2008-12-29 1850
42 공도공의 스승 무송 윤택 관리인 2008-11-18 2758
41 32世 담헌(淡軒) 이성우(李盛雨) 관리인 2008-08-25 2438
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