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공도공종회
작성일 2007-01-08 (월)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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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태·나발고개·왕산·파군재에 얽힌 전설

                   무태·나발고개·왕산·파군재에 얽힌 전설

 

 지금으로부터 천여 년 전 후백제의 침입으로 신라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신라의 원병 요청으로 고려 태조 왕건은 후백제와의 일전을 벌이게 되었다. 왕건은 군사를 이끌고 지금의 대구시 북구 서변동을 지나 연경동, 지묘3동 방향으로 진군하고 있었다. 서변동 일대를 지날 때 왕건이 군사들에게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해서 지금도 이 지방은 속칭 무태라고 불리고 있다. 그리고 연경동 부근에 이르렀을 때 선비들의 굴 읽는 소리가 낭랑하게 들어와 왕건이 감탄한 마을이라 해서 硏經이라 불린다고 한다.

 진군을 계속하면서 지금의 지묘 3동에서 지묘 1동으로 가는 고개에서 적진을 향해 진군의 나팔을 불었다. 이로 인해 이 고개는 나발고개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일설에 의하면 견훤의 군사가 왕건의 군사를 둘러싸고 쳐들어가며 나팔을 불었다 해서 나팔고개라고도 하고 왕건의 군사를 깨뜨린 견훤의 군사가 이 고개를 넘으며 나팔을 불었다고도 한다.)

 이 나발고개를 넘어간 고려군은 드디어 후백제의 견훤 군사와 일전을 불사하게 되었다. 이 싸움에서 고려군은 견훤의 군사에게 무참히 짓밟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다. 이 때 고려 충신 신숭겸이 왕건을 살리기 위해 곤룡포를 입고 왕건의 모습과 비슷하게 꾸며 적군의 눈을 속였다. 이 틈을 타서 왕건의 지묘1동 북쪽에 있는 산으로 무사히 피신을 해 화를 면했다. 이런 연유로, 이 산이 왕건을 살렸다는 뜻에서 왕산이라 부르게 된 것이라 한다.

 왕을 보낸 고려군은 신숭겸을 중심으로 끝까지 항거를 계속했다. 지묘 2동에서 파계사로 넘어가는 뒷산을 뚫고 위장전술을 폈으나 사기충천한 견훤 군사에게는 역부족이었으며 많은 군사가 쓰러지고 이리저리 흩어져 버렸다. 간신히 남은 몇몇 군사를 수습하여 오른쪽 동화사 고갯길로 환로를 개척했으나 숨어 있던 적의 군사에게 비참한 희생을 겪고 지묘 앞 냇물을 간신히 건넜다. 왕산을 배후에 두고 최후의 싸움을 벌였으나 衆寡不敵이라 進退維谷의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 이때 견훤의 군사들은 발바닥에 사마귀가 있는 왕건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기에 신숭겸을 팔공산 어느 자락에 숨어 있을 왕건이 잡힐까 두려워 자기 발바닥에 상처를 내어 먹물로 검은 점을 만들었다. 장군과 더불어 마지막 남은 고려군사는 견훤의 칼날 아래 쓰려져 팔공산 누리를 붉게 물들며 그 당시의 처참한 광경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신숭겸의 군사가 제1차로 파해서 흩어진 곳을 아랫 파군재라 하고 제2차로 파한 곳은 윗 파군재라 불리고 있어 지금도 이곳을 지나가는 이로 하여금 발길을 멈추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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