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공도공종회
작성일 2007-03-12 (월) 12:51
홈페이지 http://www.icl.or.kr
ㆍ추천: 42  ㆍ조회: 2837      
IP: 59.xxx.249
공도공께서 작성하신 “현존 유일 정사공신녹권 완본 보물급” 발견

              공도공께서 작성하신 “현존 유일 정사공신녹권 완본 보물급” 발견

허철회교수 공개 조선조 '장철정사공신녹권'

 

국문학자인 허철회 교수(동국대)가 발견, 14일 공개한 ‘장철정사공신녹권(張哲定社功臣錄券)’은 국보나 보물급으로 평가된다. ‘정사공신녹권’으로는 사실상 유일하며, 조선초기 문헌도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또 완본 형태인 데다 당시 정치상황 등 역사학·언어학·사회학적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여겨진다.

 

◇유일한 완본 ‘정사공신녹권’=‘장철정사공신녹권’은 길이 4m, 폭 40㎝의 필사본 두루마리로 되어 있다. 내용에 따르면 이 녹권은 조선 2대 임금인 정종 1398년 등극, 그해 11월 당시 도승지인 이문화(李文和·1358~1414)가 왕명에 따라 작성, 장철(張哲·?~1399)에게 발급했다. 이문화는 인천이씨 중시조(공도공파)로 고려말 조선초 이름난 문인이다. 정종은 즉위 직후 ‘1차 왕자의 난’에 공을 세운 공신들을 포상했는데 장철은 이등공신 상등급에 책정됐다. 일등공신은 12명, 이등공신은 17명이다.

조선조 최초의 공신녹권은 개국에 공을 세운 공신들에게 준 ‘개국공신녹권’이며, ‘정사공신녹권’은 조선조 2번째 공신녹권이다.

현존하는 개국공신녹권은 1392년 이화(李和)에게 내린 ‘의안백이화개국공신녹권’(국보 232호), 1397년 심지백에게 내린 ‘개국원종공신녹권’(국보 69호) 등 5건으로 모두 국보나 보물로 지정돼 있다.

반면 ‘정사공신녹권’은 없다고 할 수 있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소장된 ‘정사공신조온사여왕지’(보물 1135호)는 그 제목에서처럼 정사공신녹권이라기보다는 공전(功田)을 내린다는 왕지(王旨)적 성격이 강하다. 허철회 교수는 “‘장철정사공신녹권’은 유일한 정사공신녹권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신승운 성균관대 교수는 “직접 조사를 해야 정확히 말할 수 있다”며 “그러나 임진왜란 이전의 고문서는 매우 귀한 게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이정섭 문화재전문위원은 “현재 국보·보물로 지정된 자료들과 비교해 보존상태가 좋고 조선 초기 공신녹권이라면 국보·보물로 지정되는 데는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공신녹권이란=국가에 공을 세운 이들을 공신으로 임명하고, 공에 따른 특전 등을 규정한 문서다. 조선왕조는 국가의 대사 때마다 논공행상을 통해 포상의 하나로 공신녹권을 발급했다.

 
4m에 달하는 '장철정사공신녹권'의 마지막 부분, 녹권을 발급한 관청인 공신도감 관원의 벼슬과 이름이 열거돼 있다

◇정치사 연구의 귀중한 사료=‘장철정사공신녹권’은 1398년(태조 7년) 8월 일어난 ‘1차 왕자의 난’ 공신들을 포상한 자료다. ‘1차 왕자의 난’은 ‘방원(후에 태종)의 난’ 등으로 불리는 것으로 왕위계승권을 둘러싸고 방원이 그의 이복동생인 방석의 일파와 싸운 사건.

태조가 계비 신덕왕후 강씨의 소생인 방석을 세자에 책봉하자 태조 첫째부인인 신의왕후 한씨 사이에 태어난 방원이 형제들과 힘을 모아 정도전·남은 등 반대세력을 제거하면서 세자 방석과 그의 형 방번까지 살해했다. 이후 하륜 등 방원 일파는 방원의 형인 방과를 정종으로 등극시키게 된다.

‘장철정사공신녹권’에는 공신 29명의 이름과 이들에게 내린 특전 등이 자세하게 기록돼 있다. 또 문서를 이은 곳에는 옥새를 찍었다. 녹권 내용은 일등공신에게는 전 200결·노비 25구씩을, 이등공신 상등급에는 전 150결·노비 15구씩을, 하등급에는 전 100결·노비 10구씩을 내렸다.

또 “공로가 중대하여 영원토록 잊을 수가 없으므로” “공신 모두에게 녹권을 작성해주고 각을 세워 화상을 그리고, 비를 세워 기록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공신들의 자손은 “죄를 범해도 용서”하기도 했다. 허교수는 “정도전 등을 ‘간신’으로 표현하는 등 당시 정치권력은 물론 사회상 연구 등에도 큰 도움이 되는 자료”라고 말했다.

이 녹권은 또 본문에 많은 이두가 쓰여 있으며 끝부분에는 녹권을 작성하는 데 참여한 관료들의 서명인 수결(手決)이 적혀 있다.

조선 초기 언어 및 고문서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허교수는 “충남 천안에 사는 장철 후손에게서 이 녹권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경향신문 도재기·윤민용기자〉

 

  0
3500
40 허씨에서 분적된 인천이씨 종회 2008-07-08 4047
39 [중국]쓰촨성(四川省)과 인천이씨 공도공종회 2008-05-22 2707
38 독립투사 32세 이태준 관리자 2008-01-07 2589
37 고려대전에 배향된 휘 공수 할아버지 약력 관리자 2007-11-24 2564
36 대행왕후(공도공의 따님 흥녕 부대부인의 따님) 졸기 운영자 2007-05-21 3202
35 창의격문 관리자 2007-03-12 2310
34 공도공께서 작성하신 “현존 유일 정사공신녹권 완본 보물급” 발.. 공도공종회 2007-03-12 2837
33 문정공 휘 이지저(6세) 운영자 2007-02-06 2414
32 문충공 휘 이공수(5세) 운영자 2007-02-06 2317
31 장화공 휘 이자연(3세) [2] 운영자 2007-02-06 2857
30 李澄玉 장군을 아시나요! 이협락 2007-01-25 2694
29 시조공 할아버님 묘소의 풍수이야기 [1] 공도공종회 2007-01-08 2872
28 고려시대 인천이씨 인물고 [1] 허철회 2007-01-08 2439
27 이문화정전(李文和正傳)을 위한 초석놓기 허철회 2007-01-08 1932
26 청평거사 이자현(Ⅱ) 공도공종회 2007-01-08 1903
25 대각국사 의천은 왜 송나라에 밀항했나 공도공종회 2007-01-08 1855
24 살아 있는 역사로서의 족보 공도공종회 2007-01-08 1678
23 무태(無怠)마을의 조산(鳥山, 造山)에 얽힌 전설 [1] 공도공종회 2007-01-08 1817
22 무태 태봉의 유래 공도공종회 2007-01-08 1690
21 무태·나발고개·왕산·파군재에 얽힌 전설 공도공종회 2007-01-08 1645
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