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35세 하룡
작성일 2007-01-08 (월)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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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공(文正公) 이지저(李之)
문정공(文正公) 이지저(李之 )

 **** 용모여화(容貌如畵) 이지저(李之)

☞<서도구호(西都口號)>(평양에서 읊음)

대동강수유리벽(大同江水琉璃碧)-대동강 물은 유리처럼 파랗고

장락궁화금수홍(長樂宮花錦繡紅)-장락궁에 만발한 꽃은 비단처럼 붉구나

옥연일유비호사(玉輦一遊非好事)-옥연을 타고 노님이 좋은 일이 아니라

태평풍월여민동(太平風月與民同)-태평스런 풍월을 백성과 함께 함이라

 

<동도희(東都戱)>(동도의 유희)

승취혼혼효몽전 (乘醉昏昏曉夢顚)-술에 취해 혼혼하니 새벽 꿈이 어지러워

부지장하옥인면 (不知帳下玉人眠)-방장 안에 옥 같은 미인 자고 있는 줄 모르네

고응해부서강월 (故應解賦西江月)-응당 서강월을 읊을 줄 알지마는

막소풍정감소년 (莫(소)風情減少年)-풍정이 소년 때보다 감했다고 웃지 말라

 

*이지저(李之)는 고려 仁宗 代의 사람으로 자를 자고(子固), 혹은 종고(宗固)로 불렀으며 18세에 문과에 장원하여 직한림원(直翰林院)이 되었다.  인종 초년에 右正言이 되었는데 의논하는 것이 매우 공정하였고 중서사인(中書舍人), 수사공(守司空), 상서예부사(尙書禮部事), 참지정사(參知政事) 등을 두루거쳤다. 공은 시중(侍中) 공수(公壽)의 아들로 본관은 仁川, 시호는 文正이다. 지저의 父인 이공수는 이자겸과 재종형제가 되는데 권세를 마음먹은 대로 부린 시기를 만나서는 절대로 서로 빌붙지 않았으며 한때 이자겸의 국정 농락에 항거, 자겸에게 미움을 받아 좌천되어 平州使가 되었으나 자겸이 죽자 다시 등용되었다. 인종 15년 1137년에 卒하니 '시호는 文忠이다'라고 동사강목 第八 下에 기록하고 있다.

 

당시 묘청, 백수한 등이 묘술로써 조정을 현혹케 하였으나 유독 기거주(起居注) 지저(之 )만이 그들을 극력 배척하며 말하기를

"이 무리들이 반드시 나라를 그르칠 것이다."

라고 말하고는 묘청, 백수한 등을 경계할 것을 자주 간하였다. 왕이 서경에 갔을 때 묘청과 백수한 등이 왕에게 아뢰기를

"上京은 지세가 쇠진한 까닭으로 하늘이 재앙을 내려서 궁궐이 불타서 없어졌으니(이자겸의 난에 불탐) 모름지기 西京에 자주 임어(臨御)하시어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모아서 무궁한 왕업을 누려야 할 것입니다."

하니 日官들은 모두가 옳지 않다고 했으나 정지상(鄭知常)과 김안(金安) 등은 말하기를

"성인의 말은 어길 수 없습니다."

하였다. 왕이 이에 서경에 순행(巡幸)하여 금암역(金巖驛(平山))에 이르니 비바람이 갑자기 일어 왕은 방향을 잃고서 진흙에 빠졌으며 날이 저물자 눈이 내리고 추위가 심하여 말과 낙타가 죽은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에 묘청이(妙淸)이 말하기를

"내가 일찍이 우사(雨師)와 풍백(風伯)에게 임금의 수레가 길을 떠나거든 비바람이 일지 못하도록 하였는데 이미 허락해 놓고 이와 같이 하니 얄미운 일이다."

라고 하였다. 묘청의 거짓이 이와 같았다. 정지상 등이 또 말하기를

"대동강에 서기가 있으니 이것은 신룡(神龍)이 침을 뱉은 것으로 천 년만에 한 번 만나기 어려운 일입니다. 청컨대 위로는 하늘의 뜻에 응하고 아래로는 사람의 소망에 따라 金國을 제압하소서."

하였다. 이때 왕이 승선(承宣) 이지저에게 물으니 대답하기를

"금국은 강국이니 가볍게 보아서는 아니 됩니다. 하물며 재부宰夫와 추부樞府의 대신들도 상도上都에 유수留守하고 있으니 한 두 사람의 말만 치우치게 듣고서 큰 의론(議論)을 결정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라고 아뢰니 왕은 그제야 그쳤다. 그가 묘청, 백수한 등의 국정 농락을 정확히 꿰뚫어본 안목과 식견은 서경 천도를 구실로 찬탈의 음모를 획책하던 무리들을 제지하기에 족하였던 것이다.

이지저는 후일 어사대부, 예부상서, 정당문학 등을 두루 거친 후 세상을 떠나니 중서시랑 평장사로 추증이 되었다.

당시 명사들이 공을 표현하기를 <용모여화(容貌如畵) 지의활여(志意豁如) 불경언어(不輕言語) 불망고시(不妄顧視)>라 하였는데 즉 '공의 용모는 그림 같고 마음이 활달하였으며 말을 경솔히 하지 않고 함부로 돌아보는 일이 없었다' 라고 했으며

'공의 충성스런 말과 계책은 이윤(伊尹)의 이훈(伊訓)과 부열(傅說)의 열명(說命)과 더불어 표리가 될만하였으니 이른바 옛 사람이 말한 대신의 재목이라 하였으며 문장과 사업이 한 때의 호걸이 되었다' 라고 평하였다.

공이 살던 마을을 지금도 정당리(政堂里)라 부른다.

곽동순이 임금을 대신해서 지은 곽동순대왕제(郭東珣代王製)에 '이지저는 식견이 기미를 내다보고 기국은 방장을 갖추었으니 경술(經術)은 성인의 정수(精粹)를 얻었고 문장은 유가(儒家)의 종장(宗匠)이 되었다<李之( )識造機微 器含方丈 經術得聖人之粹 文章爲儒者之宗>' 라고 하였다.

다음은 이지저가 지은 서경대화궁치어(西京大花宮致語) 중에 실린 口號이다.

옥련서순제육춘(玉輦西巡第六春)-옥련이 평양을 순시함이 차례로 여섯째 봄

주방수구명유신(周邦雖舊命惟新)-周는 비록 오랫으나 命은 아직 새롭도다

건원용구군용합(乾元用九群龍合)-건원의 아홉을 씀은 뭇 용이 합함이요

이조당중서국빈(이照當中西國賓)-이가 하늘 가운데서 비치니 사방의 사신들이 입조(入朝)하도다

제소이경문광락(帝所已驚聞廣樂)-궁중에서 광대한 음악을 듣고 놀랐사온데

녹명환부연군신(鹿鳴還賦宴群臣)-녹명 또 읊으시며 뭇 신하들과 잔치하시네

태평부로쟁상하(太平父老爭相賀)-태평함을 부로들이 다투어 하례하오니

오색운중망북신(五色雲中望北宸)-오색 구름 가운데 북신을 바라보네

라고 하였다.

또, 李仁老의 파한집(破閑集)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진양고제도(晋陽古帝都) 계산승치위영남제일(溪山勝致爲嶺南第一)....

즉 진양은 옛 제도(帝都)로서 계곡과 산의 경치가 영남 제일이다. 누가 그곳의 그림을 相國인 지저에게 바쳤더니 이것을 벽에 붙여 두고 보았다. 군부참모(軍府參謀) 영양(榮陽) 정여령(鄭與齡)이 가서 뵈오니 상국이 가리키며 '그 그림은 君의 상자향(桑梓鄕)이니 한 句가 있어야지' 하며 곧 붓을 들어 쓰기를

수점청산침벽호(數點靑山枕碧湖)-두어 점 푸른 산이 호수를 베고 누웠는데

공언차시진양도(公言此是晋陽圖)-공은 이를 진양도라 하는구나

수변초옥지다소(水邊草屋知多少)-물가에 초옥이 그 얼마인고

중유오려화야무(中有吾廬畵也無)-그 그림 속에 내 초려는 있는가 없는가

라고 하였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그의 정민함에 탄복하였다 한다.

(도움⇒서도(西都)-평양. 구호(口號)-즉석에서 입으로 부름. 옥연(玉輦)-임금 수레, 또는 임금을 상징. 주방(周邦)....유신(維新)-시경(詩經) 대아(大雅) 文王 편에 '周雖舊邦 其命維新' 이라 보이는데 '주나라가 비록 오래되었으나 그 국운은 날로 새롭다'는 뜻인 바 주 문왕이 능히 그 백성을 새롭게 하여 백성이 새롭게 되지 않은 사람이 없었으니 나라는 비록 오래되었지만 백성은 곧 새롭게 되었으므로 하늘이 문왕에게 명한 것이 또한 새롭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이 고사를 인용한 것임. 風月-자연의 좋은 경치. 혼혼(昏昏)-술 취한 모양, 어리석은 모양, 졸다. 西江月-남녀 애정을 노래한 사곡(詞曲). 소( )-웃다, 소(笑)의 古字. 활豁-뚫린 골 활, 통하다. 이훈(伊訓)-탕왕의 손자인 太甲이 조상의 업적을 계승하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여 경계하여 지은 글. 方丈-세상의 사범이 됨, 절의 주지. 서순(西巡)-임금이 평양을 순시함을 말함. 第六春-입춘에서 곡우까지의 절기. 건원(建元)-하늘. 이( )-주역의 괘(卦), 이(離)와 통하고 日-해-을 상징. 녹명(鹿鳴)-시경 녹명편은 君臣의 연회에 쓰이는 樂歌 이름, 녹명의 연회라 함. 북신(北宸)-宸은 집, 혹은 대궐을 말하며 북신은 임금을 상징. 상자향(桑梓鄕)-詩經에 '유상여자필공경지황어인호(維桑與梓必恭敬止況於人乎)' 라는 말이 있다. 즉, '부모가 심은 뽕나무나 가래나무도 공경하거늘 하물며 사람이랴' 라는 말이다. 상자지향(桑梓之鄕)은 여러 代의 조상 무덤이 있는 고향, 古代에는 자손들에게 고향을 잊지 말라는 뜻에서 선조 무덤 가에 뽕나무와 가래나무를 심었다고 함. 여기서는 정여령의 고향 진양(晋陽)을 말한다. 재(梓)-예덕나무 혹은 가래나무 재, 고향 재, 자. 영양(榮陽)-정여령의 관향(貫鄕), 위의 진양도(晋陽圖) 詩는 정여령의 작으로 실린 곳도 있음.

*이윤(伊尹)-은나라 탕왕을 도운 명재상. 이윤이 유신(有莘)의 들에서 밭 갈고 살면서 요순의 도를 즐거워하여 의가 아니고 도가 아니면 천하를 녹으로 준다하더라도 돌아다보지 않았고, 의가 아니고 도가 아니면 한 오라기의 풀도 남에게 주지 않고 한 오라기의 풀도 남에게서 취하지 않았다.

탕왕이 사람을 시켜 폐백을 보내 그를 초빙하니 태연하게 말하기를

"내가 어떻게 탕왕의 초빙하는 폐백을 받겠는가? 내가 어찌 밭 가운데 살면서 요순의 도를 즐거워하는 것과 같겠는가?"

하였다. 탕이 세 번이나 사람을 시켜 초빙하니 그때야 태도를 바꾸고서 말하기를

"내가 밭 가운데 살면서 이렇게 요순의 도를 즐거워하는 것이 어찌 이 임금을 요순의 임금으로 만들게 하는 것과 같겠으며 이 백성을 요순의 백성으로 만들게 하는 것과 같겠는가? 내가 어찌 몸소 직접 보는 것과 같겠는가? ....내가 그들을 일깨워 주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

라고 말하면서 출사하였다.

*부열(傅說)과 열명(說命)-부열은 은나라 고종대의 명재상이다. 열명은 서경(書經) 상서(尙書)의 편명으로 상편은 부열을 얻어 정승을 명한 일이요, 중편은 열이 정승이 되어 경계하여 올린 글이며 하편은 부열이 학문을 논한 글임)

 

                                                                    35세 하룡(부산 수미초등학교 교감)

                                                                    (☎.051-746-9962/011-9527-9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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